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는 인류가 대체 에너지를 채굴하는 행성 판도라로 파견된다. 인간과 판도라 원주민인 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 원격 조정하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한 그는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 사이로 잠입한다. 제이크는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타이타닉’이 10개 부문에 이어 급기야 최우수 작품상까지 거머쥐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고무된 듯 소리쳤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the King of the World)”
그의 발언은 조크(joke)라기엔 너무도 오만했고, 사실 조크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오만한 발언에 비난을 쏟아냈다.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을 만든 감독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싫어졌던 것일까. 아니면 ‘왕’도 부족해 ‘창조주’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로부터 12년, 카메론 감독은 자신의 ‘월드’를 아예 창조해 들고 왔다.
카메론 감독이 창조한 세계는 ‘판도라’. 지구에서 4.4광년 떨어진 이 별은 키가 3m가 넘고 푸른 피부에 얼룩말 같은 무늬가 있는, 노란 눈에 긴 꼬리를 가진 나비족이 주인인 행성.
17일 공개된 판도라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허공에 떠있는 산에서 무성한 열대의 숲까지 풍성한 상상력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수시로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동식물의 모습은 진기한 시각체험을 안긴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생물들이 일제히 빛을 내는 숲의 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바타’는 이 판도라를 배경으로 지구인으로부터 자연을 지키려는 나비족의 사투를 그린다.
이모션 캡처라는 신기술의 힘을 빌려 표현된 나비족의 동작과 표정은 매우 섬세하고 풍부하다. 비록 CG로 그려진 캐릭터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표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강력하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특히 여전사 네이티리는 그동안 카메론 감독이 만들어낸 여전사들-리플리(에이리언), 사라 코너(터미네이터)-에 못지않거나 넘어선다. 바탕이 되는 연기를 멋지게 소화한 조 셀다나의 생동감과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표현력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최고의 CG캐릭터로 꼽을 만하다.
영화는 초반부터 폭풍이 몰아치듯 빠른 속도에 승부를 건다. 짧은 장면 위주로 컷 수를 높여 속도감을 강조했다. 다양한 액션 장면들은 독창성과 완성도에 있어서 탄성을 자아낼만한 대단한 수준이다.
탄복할만한 볼거리에 비해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다는 지적을 들을 만하다. 그것도 이미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다. 지구인이 나비족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동화되는 이야기는, 남북전쟁의 영웅 존 던바가 인디언들에게 동화되는 ‘늑대와 춤을’을 연상시킨다. 헬기에서 폭탄 투하를 명령하는 전쟁광 쿼리치 대령은 ‘지옥의 묵시록’의 길고어 대령에서 가져왔을 게 분명하다. 심지어 쿼리치의 작전명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길고어가 듣는 바그너 음악에서 따왔다.
짚고 넘어갈 건 카메론 감독이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아니며 다만 좋은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카메론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고전적인 테마와 익숙한 이야기 구조 덕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그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릴 줄 아는 재능의 소유자다.
‘아바타’의 이야기는 독창적이진 않지만 간결하며 안정적이며 효율적이다. 특수효과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아우른다. ‘아바타’의 볼거리가 끝까지 관객을 지치거나 심드렁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 잘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러닝타임을 나눠가면서 볼거리 위주로 인위적인 플롯을 짜지 않고, 스토리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펙터클 장면을 등장시키기 때문에,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리듬감을 잃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은 “지구인으로부터 자연을 지키려는 나비족들의 사투가 그려지며 이 영화가 3D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었다”고 말했다.
카메론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최소화한 채 열광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오락물을 만든 것이다.
가능하면 3D 상영관에서 보시라 권해드린다. ‘아바타’에선 인물이나 배경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팝업’ 효과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인물에 입체효과를 주면 인물 자체는 돋보이지만, 반복되면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감안한 것. 덕분에 선명한 입체감에 비하면 눈의 피로도도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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