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려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비뚤어진 예술교육에 멍드는 한국 아이들

대학가려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비뚤어진 예술교육에 멍드는 한국 아이들

<유럽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다> 1. 돈으로 배움을 사는 대한민국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2-17 12면
  • 임연희 기자임연희 기자
 <시리즈 순서>
 1. 돈으로 배움을 사는 대한민국
 2. 아이와 엄마의 교육천국 핀란드
 3.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모델 스웨덴
 4. 자유·평등을 향한 예술교육 독일

 
 1. 돈으로 배움을 사는 대한민국

 “자유, 최고예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에서 만난 열여섯 살 정엽이의 첫마디는 ‘자유’였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정엽이는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을 “시험에 대비해 공부하고 외우기를 강요한 기억 뿐”이라고 회고했다. 초중고생의 77%가 사교육을 받고 47.2%의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는 우리 교육현실을 경험한 정엽이가 발도르프에서 만끽하고 있는 자유가 부럽기까지 하다.

돈으로 배움을 사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돈을 들여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무료로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라는 핀란드 아이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과 병원진료비가 공짜인 스웨덴, 똑똑한 아이를 걸러내는 교육이 아닌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고를 심어주는 독일의 사회복지와 문화예술교육을 살펴봤다.

공부는 해야 할 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며 예술인을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유럽 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4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둔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슬기(9)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영어학원 차를 타고 가 영어공부를 한 후 수학학원으로 이동해 수학공부를 마친 뒤 수영장에 간다. 또 간단히 간식을 먹고 난 후 음악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친 뒤 무용학원에서 발레 강습을 받고 집에 오자 방문 학습지 교사가 기다리고 있다.

 영어와 수학, 피아노, 학습지는 슬기가 매일 배우는 것들이며 월·수·금요일엔 수영과 발레를, 화·목요일엔 태권도를 배운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에는 엄마와 문화센터에 가서 노래와 미술공부를 한다.
 “내 꿈은 우주인 이소연 씨와 같은 과학자가 되는 것인데 엄마는 영어와 피아노, 수영, 미술은 기본이라며 꼭 배워야한대요”라는 슬기는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것은 블록 쌓기와 큐브 맞추기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슬기 못지않게 엄마 김선주(40)씨도 불만이 많다.
 “아이를 데리고 사교육 없는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야지 숨 막혀 살 수가 없다”는 김 씨는 “매일 만나는 옆집 아줌마들이 이건 가르쳐야하네, 저건 꼭 필요하다는 둥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안 시키자니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질까 걱정이 되고 모두 하자니 등골이 휜다”며 한숨을 쉰다.

 김 씨가 하나밖에 없는 딸 슬기를 위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매월 76만5000원으로 남편 월급의 3분의 1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교육비 조사보고서’를 보면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의 48.3%가 음악 사교육을 받고 38.9%가 미술 사교육을, 9.4%가 무용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예술 사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의 44.4%가 학원에 다니며 개인과외(11.1%), 사설문화센터(9.6%), 유치원과 어린이 집 등의 특기적성(18.0%), 그룹과외(6.1%) 등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들이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돈은 평균 매월 22.1만원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대학 수석입학생에게 물으면 하나같이 과외는 한 번도 안했으며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하듯 실제 부모들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통계치보다 훨씬 많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 씨의 항변에 적잖은 주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것이다.
 안승문 교육희망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돈으로 배움을 사야하고 돈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세계 최악의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꿈과 희망까지 짓밟히고 있다”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국가적인 교육목적과 원칙이 세워져야하며 모든 아이들에게 최상의 교육이 차별 없이 제공되는데 재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술교육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등 악기를 배우려면 음악학원에 가야하고 음악과 무용, 미술이 대학진학을 위한 도구이지 아이의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나 지난 2일 ‘조수미와 함께 만드는 작은음악회’를 가진 부산 동평초등오케스트라 200여명의 어린이들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에도 작은 희망은 있어 보인다.

 지난 2003년 창단된 동평초교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부산시교육청의 지원으로 상대적으로 문화혜택이 적은 소외지역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등 아이들 누구나 자신이 배우고 싶은 악기를 선정해 무료로 배우도록 했다.


 창단 초기에는 운동장에 의자를 놓고, 비가 오면 복도에서 연습한 어린이들은 매일 점심시간 15분씩을 이용해 악기를 배웠는데 이번 조 씨와의 협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문화예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동평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박우영 장학사(부산시교육청)는 “음악인을 만들기 위한 전문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키우는데 목적이 있다”면서 “형편이 어려워 피아노학원도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여러 악기를 다뤄보면서 행복해하고 연주회장을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효과”라고 말했다.

 노인, 장애인, 재소자, 결혼이주여성 등 소외계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설립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이대영)은 매년 6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초중고교와 복지시설에 예술강사를 파견하고 교도소와 군,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처음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한다고 하자 담당자들이 ‘웃긴다’고 했는데 재소자와 소년원생들에게 문학, 연극, 미술 등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한 결과 수형자들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주변인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며 사회복지와 결합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임연희 기자 lyh3056@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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