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를 사랑합니다[강풀 지음/문학세계사] |
80을 앞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인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소개하려고 만화 이야기를 길게 시작했다. 이 책은 작년 12월에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으며 올해 대전시민이 같이 읽어볼 책으로 끝까지 1위 책과 경합을 벌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친구의 상가에서 `호상(好喪)'이라는 말에 노인네가 살다 죽으면 다 호상이고 살만큼 살았으니까 죽는게 당연하냐며 화가 난 김만석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분은 잠시 멈칫 하게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가에서 입에 담아 봤을 단어가 아닌가.
주민등록에도 올라 있지 않아 77세를 그냥 `송씨'로 살아온 송씨 할머니 주변엔 할머니가 주워온 폐지 위에 무게가 더 나가도록 몰래 물을 뿌리는 고물상 주인과 겨울 눈 쌓인 내리막 골목길을 몰래 리어카 뒤꽁무니를 잡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김만석 할아버지와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장군봉 할아버지가 있다.
송씨 할머니가 주민등록에 `송이뿐'이라고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 그리고 치매 걸린 아내를 집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장군봉 할아버지. 만화 대사 중 한 장면 그대로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에 펼쳐지는 이 따뜻하고 애틋한 우정과 사랑이야기는 보는 내내 화장지를 옆에 끼고 있게 할 정도다.
이 작품의 작가 강풀은 30대다. 강풀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앞으로 몇 년간 할 이야기들을 축적해 놓고 계획을 짜고 만화를 그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계획에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모두 돌아가시고 친할머니만 살아 계셨는데 1년에 두어번밖에 할머니를 뵐 수 없었다고 한다.
서른 중반 즈음 가정형편이 좀 나아졌을 때 부모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할머니를 모셔오는 일이었고 그때 할머니 연세는 93세였다고 한다. 그때까지 노인하면 공원에서 비둘기를 쳐다보고 앉아 있거나 노인정에서 쩜 십짜리 고스톱 치면서 세월을 보내는 무기력한 이미지였었는데 할머니와 가까워지면서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가슴속엔 여전히 소녀가 살고 있고 내가 `철학'이라고 일컫는 것을 `일상'으로 알고 계셨고 내가 `이해'해야만 하는 것을 당연히 `알고'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을 보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세월을 살고 계신 것이었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감정들이 가슴속에 살아 잇기 때문에 노인분들이 더욱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분들의 사랑을 꼭 만화로 그리고 싶었다”고 전하고 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손주들에게 저런 느낌을 전해줄 수 있게 늙어갈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강풀 작가는 만화를 그리면서 복잡한 주인공간의 관계들을 늘 계산해 두고 그리는데 그런 계산없이 만화를 그리기는 처음이었고 무엇보다도 이 만화를 그리는 동안 참 행복했다고 한다. 이 말 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지는 행복수치가 얼마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만화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감히 추천하건데 이 겨울을 넘기지 말고 꼭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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