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과학재단의 홈페이지(www.nsf.gov)를 열면 보이던 문구이다. 국가방위를 논할 때, 국방비 또는 최고통수권자를 논하지만 왜 교육도 아닌 과학을 언급했을까.
▲ 김영주 생명연 바이오인포메틱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세계를 지배하였던 제국 중에 바빌로니아제국(300년), 페르시아제국(200년), 로마제국(500년) 등이 있다. 로마제국의 몰락 원인으로 지도층의 통치력과 지적 수준의 저하, 경제력의 붕괴, 야만족의 침입 격화 등을 들고 있다.
미국이 소련의 몰락 이후 군사,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과학, 사회면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 세계의 제국을 떠올리며 과연 미국의 패권이 앞으로 몇 년이나 지속될 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당분간 쇠퇴하지 않고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그 이유를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에 두지 않고 미국의 창의력과 다양성에 두고 있었다. 미국의 대학을 보면 일부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학생들이 강제로가 아닌,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그것도 열심히 한다. 미국은 2%의 지도자 그룹이 창의력와 다양성을 제대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 완수와 결과만을 집착하고 과정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같다. 마치 올림픽의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그 마지막 한 판 승부와 금메달 수여식 단상만을 생각하며, 모든 고생을 마다 않는 초단거리 선수와 같이 과학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만에 승부가 나는 운동경기라면 모르겠지만, 평생을 생각하고 연구해야 하는 연구자라면 연구하는 과정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미국에 근무하는 한 한인 과학자가 “(나를 고용한 기관이) 나에게 기회를 주고, 믿어주며, 기다려줬다. 그것이 감사하다”고 말한 것을 듣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구기관장에게 묻고 싶다. 성실한 과학자에게 기회를 주고, 불안한 눈길보다는 신뢰를 주며, 실적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는지를.
생물분야에서 몇 몇 대규모 국제 컨소시엄 과제가 시작됐다. 1990년에 시작하여 13년이 걸린 인간게놈프로젝트와 2002년에 시작한 국제햅맵프로젝트에도 한국이 가입하지 못 하고 있다. 연구경쟁력에서 뒤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기술훈련과 인력확보도 못한 것이다. 이것은 몇 년이 지나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현대 전쟁이 경제력 없이 안 되듯, 현대의 과학도 충분한 정부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2008년 시작된 1000게놈 프로젝트도 한국 없이 시작됐고 내년에 시작될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에서도 한국은 배제를 막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과학화를 막는 또 하나 중요한 걸림돌은 연구관리자의 절대적 부족에 있다. 연구방향에 대한 모든 재량권을 갖는 대학 교수와는 달리, 정부출연연 또는 산업체의 연구소는 심각한 연구관리자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연구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막무가내식, 정량평가식 연구관리자가 있는가 하면, 관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연구만 해온 사람이 연구관리자라고 앉아서 방향을 반대로 틀어놓고 있다. 나이 들면서 창의력의 저하를 연구관리 쪽으로 돌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현 수동형, 관료형 시스템보다는, 아직 젊은 연구자가 기획과 경영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국가 연구 정책을 결정하고, 연구기획 및 연구사업화, 해외협력, 과제관리 및 인사, 실적관리를 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매년 몇 천명의 박사학위가 쏟아지는 현 시점에서 올바른 연구관리자의 양성이 한국 과학의 제일 시급한 일은 아닐까? ’과학은 국가방위다’라는 문구처럼 과학은 한 국가의 국력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한국의 과학정책 입안자들은 기존의 나른한 생각을 버리고 실제적인 현안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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