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곤 프랑스문화원장 |
2009년도 이렇게 저물 모양이다. 저무는 해를 어떻게 따라 잡겠느냐마는, 마침 세모와 더불어 이 칼럼을 다른 분들에게 넘겨주어야할 마당에 새해의 바람을 적어보는 것은, 어설프게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나 새해 연하장에 펜으로 꼭꼭 눌러 썼던 그 옛날의 기억이 무작위로 발송하는 핸드폰의 문자메시지 연하인사보다는 훨씬 품격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먼저는, 불가능한 바람이지만, 모든 사람이 건강한 한 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부자 되세요.” 라는 구호는, 부자 되기가 구호로 달성되지도 않겠지만, 단지 건강할 때나 그 열매를 맛 볼 수 있는 신기루일 뿐이다. 해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은, 어느 날 병원 침대 맡에서야 문득 그 의미가 다가와야 할 단상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건강함이란, 물론, 몸과 마음에 공히 해당된다. 몸의 고통이 자신과 가족에 한정된다면, 마음이 건강치 않은 사람들의 파괴력은, 특히 그들이 사회적 위치가 중요할수록,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대명제에 어느 누구 토를 달겠냐마는, 우리의 교육은 전체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하기보다는, 몇몇 “공부기계들”의 상류사회 입성에만 관심하는 병적인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어느 때 부턴가, 모든 부모들의 시선이 이러한 계층의 진입을 가능케 한다는 몇몇 대학에 고정되고, 교육을 하는지 장사를 하는지 모를 대학들의 태도를 무시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을 치유하여야할 정부기관의 잇따른 “조치”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인상이다. 가상의 미래(점수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된다는 일류대학의 인기 학과들이 몇 년 후에 기피대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를 위하여 현재의 삶(한국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진학문제 이외의 더 큰 고민거리가 있는가?)을 포기한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문제는 정치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상, 이 모든 사회적 고민들은 정치적인 합의를 요구하고, 설사 바람 덕에 선출된 선량들도 신문의 8할을 점거하는 이 난제에 가끔은 눈길을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뱉어지고 따라서 아이들의 출발이 불평등할 수 있는 통념이 서식할 수 있는 사회는 미래조차가 불투명한, 그래서 희망이 결여된 사회일 수밖에 없다. 4대강 개발, 행복도시 이전 등 여전히 사회적 분란이 많았던 한 해였다. 교육의 문제는,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던져보는 미끼가 아닌, 더 상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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