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백제史 실마리... 사비시대에서 찾아야

잃어버린 백제史 실마리... 사비시대에서 찾아야

<고대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 백제를 찾다> 8. 백제문화 탐구의 새로운 모색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2-11 13면
  • 글=박기성.사진=김상구 기자글=박기성.사진=김상구 기자

 <글싣는 순서>
 1. 비상하려는 봉황의 꿈, 백제금동대향로
 2. 룽먼석굴(龍門石窟)에 남겨진 백제인의 흔적
 3. 서산마애삼존불과 백제인의 미소
 4. 부여 정림사와 뤄양 영녕사 소조상
 5. 사비도성과 난징(南京)의 건강성
 6. 무령왕릉속의 독창적 문화인
 7. 백제 유민들의 흔적
 8. 백제문화 탐구의 새로운 모색
 9. 사진으로 보는 중국속의 백제문화
 10. 시리즈를 마치며


8. 백제문화 탐구의 새로운 모색
 
지난 9월 중순, 중국의 한 박물관에서 기자가 목격한 풍경은 오래토록 기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취재차 박물관을 찾은 기자의 눈에 국내 박물관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중국 박물관측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그들은 해당 박물관 내 유물 보관 장소인 수장고에 들어가 유물 연구에 한참 몰두해야 되건만 전시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애당초 수장고를 보여주기로 한 중국 박물관측이 수장고를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내년도에 교류협력을 한다’는 협정문에 서명만 한 채 4박5일간의 중국 출장을 마무리해야 했다. 성과를 얻기는커녕 질질 끌려 다니는 교류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일까?


▲해외와의 네트워킹 중시해야=난징시(南京市)박물관 부관장을 역임한 난징사범대학교 주유흥 교수는 “한국 박물관의 경우 관장들이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관장이 10년 이상 한 박물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연구의 지속성은 물론 해외 박물관과의 교류 등에서 많은 장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뤄양(洛陽)박물관 왕수관장의 경우 10년 이상 재직해오고 있으나 이곳과 교류 협정을 맺고 있는 부여박물관의 경우 2~3년 마다 관장이 바뀌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인적교류 또는 교류전이 이루어지지 못함은 물론 이에 따른 자료 수집 등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부여박물관 뿐 아니라 대다수 국내 박물관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처럼 박물관장의 잦은 교체는 지속적인 행사보다는 일회성 행사를 양산하게 된다.

국내에서 중국통으로 알려진 청계천문화관 김영관 관장은 “상당수의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처럼 한 가지 행사를 진행하고 끝나기 때문에 중국과의 네트워킹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오류에서 벗어나 전문가들의 꾸준한 교류를 이어가야 학술적 또는 인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와의 네트워킹은 기존의 문헌중심 연구에서 벗어나 해외 현장 탐방 연구 등을 통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나 자료 획득 등의 성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종래에는 국내에서의 연구 즉 백제 관련된 부족한 자료만을 갖고 연구에 몰두했던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중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학자가 문헌만을 비교 연구해 중국 전문가로 자처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점들을 감안, 향후 중국, 일본 등 백제 주변국에 대한 현지 연구를 통한 새로운 백제문화 탐구가 절실한 실정이며 이는 인맥 확보 측면에서도 시급한 과제이다.

부여군의 경우 의자왕 무덤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뤄양 북망산을 둘러보는 중국 탐사를 해오고 있으나 실제적인 탐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망산 봉황대 주변을 한번 시찰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이처럼 허술한 답사를 피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지속저인 인적 교류를 유지하는 가운데 양국의 전문가 집단이 공동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연구를 펼치는 네트워킹 형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 같은 네트워킹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중국 쪽에 보이지 않는 댓가를 지불해야 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유물 몇 점을 살펴볼 수 있는 현재의 불평등한 교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오류 바로잡고 새로운 사실 부각해야=‘백제국은 멸망국’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백제 왕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예를 들면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경우 망국의 군주로 궁녀들과 주색잡기에 빠져 산 임금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나당연합군이 사비를 침략해오자 순순히 항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의자왕은 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海東)의 증자(曾子)’라는 평을 듣던 임금이다. 또한 적의 침입에 웅진으로 피신하며 백제를 지키려 한 인물이다.

백제에 대한 이 같은 오류는 멸망국인 탓으로 적지 않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따라서 백제에 대한 오류 바로 잡기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이와 함께 사비시대에 대한 연구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 또한 높다. 그동안은 한성시대나 웅진시대의 백제연구가 주류를 이뤘으나 앞으로는 6세기 사비시대 백제 연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비시기가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불교문화는 일본으로 전파돼 일본 문화의 주류를 형성할 정도로 사비시대는 고대 동아시아 허브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비시기의 문화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 및 부각작업도 백제문화탐구의 한 방향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합적이며 수요자 중심의 연구돼야 =백제문화에 대한 분절적인 연구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즉 고고학에서는 토기나 고분 중심의 연구 또는 기와 중심의 연구가 이루어지며 미술사 쪽에서는 금속공예 등 단편적이며 분절적인 연구위주로 진행돼 왔다. 이는 기록물이 적고 유물 발굴 중심의 편협된 연구가 진행돼 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젠 종합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이용현 학예연구사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 백제 문화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 동안 장님이 코끼리의 코나 발만 만지며 코끼리를 이야기 한 격이지만 이젠 종합적인 연구와 탐구가 모색돼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종래의 연구는 전문가 즉 전공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맞춰 연구하는 것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의 연구가 중단될 경우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같은 모순점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전공자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수요자 즉 문화향유자 중심의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 분야 도 생활사 중심의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과거 생활 중심, 과거 사람들의 생활을 밝히는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사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요구되고 있다.

즉 백제학에 대한 연구는 물론 동아시아교류학 등 세분화된 연구가 뒤따라야 하나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주대 서정석 교수는 “중국이나 일본 등에 유학 가서 전공분야의 학위를 받아도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이로 인해 제자 양성기회도 없고 결국 관련 학문의 전문가가 곧바로 도태되는 현상이 빚어진다”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 주요 대학인 충남대를 비롯해 공주대, 공주교대 등의 백제 관련 학과에 대한 지원 정책 및 연구자를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보존과학의 도입도 백제문화 탐구를 위한 새로운 방향 모색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즉 금속의 성분분석이나 재료분석, 침전물 분석 등을 통해 각종 토기나 유물의 원료 등에 대한 분석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물의 과학적 분석도 백제문화탐구의 현대적 방향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글 박기성 기자 ·사진 김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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