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포기하기 일쑤였던 줄리에겐 인생의 목표가 절실하다. 그녀는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한다. 40년 전 줄리아가 쓴 요리책의 524개 레시피를 1년에 걸쳐 시연해 블로그에 올리겠다는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시작한다. 한편 1948년 파리, 남편을 따라 파리에 온 줄리아는 프랑스 요리에 빠져든다.
‘줄리 & 줄리아’는 보고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이 따뜻함을 완성하는 배우는 단연 메릴 스트립. 연기에 관한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이 달인 배우는 잊지 못할 캐릭터를 또 한 번 완성했다. 그녀는 포동포동하고 넉살좋은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아 프랑스 사람도 울고 갈 정도의 거창한 표현력과 풍성한 유머를 선보인다.
줄리아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키가 188㎝에 달하는 거구인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리랑카와 중국에서 전략정보부원으로 활약했으며, 40에 가까운 나이에 프랑스 요리라는 신대륙에 뛰어든 이례적인 여성 셰프이기도 하다. 극중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TV요리 프로그램 출연으로 1965년 피보디 상을, 1966년 에미상을 거머쥐기도 했으며, 1980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협회의 멤버로 인정받은 미국 요식사에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스트립은 “2004년 죽은 줄리아를 어느 때보다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뉴욕타임스)” 재현한다. 새된 목소리로 노래하듯 흥얼거리는 독특한 언어습성까지 완벽하게, 특히 TV프로그램 방영분의 일부로 스토브 위에 떨어뜨린 음식을 능청스럽게 프라이팬에 다시 주워 담는 신은 스트립이 왜 ‘연기의 달인’ 소리를 듣는지 실감하는 명장면이다. 스트립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롤링 스톤’이 쓴 연기 평이 끊임없이 뇌리를 스친다.
“20년은 젊고, 20㎝는 큰 여성을 묘사하면서(이걸 대체 어떻게 했담?) 스트립은 연기의 경지를 넘어 줄리아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줄리 & 줄리아’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노라 애프런의 부활을 알린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마이클’ ‘유브 갓 메일’ 등의 감독으로 화려한 1990년대를 누렸던 그녀는 로맨틱 물을 벗어나려다 쓴 맛을 본 뒤, ‘줄리 & 줄리아’를 통해 전공으로 복귀했다. 애프런의 장기는 역시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음 한 쪽이 허전한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
‘줄리 & 줄리아’에서 애프런의 의도는 분명하다. 줄리아의 성공적인 사례를 줄리, 나아가 현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지침으로 제안하려는 것.
그 탓에 요리의 비중이 높은 영화임에도 극중 요리 자체의 유혹은 대단하지 않다. ‘바베트의 만찬’ ‘담포포’ 같은 영화의 그윽한 음식 냄새와 요리의 진미는 기대하지 않은 게 좋다.
그러나 남편을, 가족을, 친구를, 혹은 블로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누군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음식이요, 우아한 프랑스 요리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소박한 이야기는 ‘줄리 & 줄리아’를 따뜻하고 사랑스런 영화로 기억되게 만든다.
줄리아는 TV요리 프로그램 마지막에 언제나 “보나페티”(bon appetit, 맛있게 드세요)를 외쳤다. 애프런 역시 그런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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