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패션지 ‘보그’의 특집 화보 촬영을 위해 여배우 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20대에서 60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은 스튜디오 등장에서부터 각자 입을 의상 하나까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신경전을 펼친다. 예정된 소품이 늦어지면서 화보 촬영에 차질이 생기고, 게다가 고현정과 최지우의 기싸움은 급기야 큰소리로 번지게 된다.
갖가지 화려한 의상들을 갈아입고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패션쇼가 있고, 잠시 합석하게 된 신인 남자배우에게 “우리들 중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묻는 ‘감정 액션’이 있는가 하면 무엇보다 그녀들의 거침없는 수다가 있다.
각자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동료 배우 거명에서부터, 자신들을 둘러싼 소문과 이혼 전력까지 직접 거론하는 극중 이야기는 너무 솔직해 때론 위험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윤여정: 그 못생긴 놈(전 남편을 가리켜)이 나를 찼다. 못생긴 놈한테 차였다는 것보다 찬 게 낫다고들 하더라.
이미숙: 송혜교가 중국시장, 최지우가 일본시장이면 나는 재래시장이나 맡아야겠다.
고현정: (최지우에게) 너도 이영애가 라이벌이고 나도 이영애가 라이벌이면 이영애가 최고인 거냐. 우리가 무슨 우물가 아낙네냐.
날 선 공방도 있다. 고현정은 촬영장에 가장 늦게 도착한 최지우가 영 마뜩치 않다. 밤샘 촬영 때문에 힘이 들었다며 늦게 와서는 분장실도 혼자 쓰게 해달라고 하자 쏘아 붙인다.
“넌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쌍둥이 별자리라 좋겠다.”
“(성질이) 그러니까 (재벌가 시집에서) 쫓겨나지.” 최지우의 반격. 슬쩍 흔들리는 카메라와 거친 입자의 화면, 어두운 조명이 긴장의 강도를 더한다.
‘여배우들’의 재미는 무척이나 솔직해 때론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는 수다를 통해 시종 관객들에게 커튼 뒤를 훔쳐본 듯한 묘한 쾌감을 주는데 있다. 수다는 때론 치고받으며, 때론 웃음을 던져주고, 때론 서로를 보듬어 감동을 안기며 유려하게 흘러간다. 쾌활하고 산뜻하다.
충남고 22회 졸업생인 이재용 감독은 통속극 ‘정사’의 성공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지만, 그 외의 작품은 실험성이 강하다. 그는 이 희귀한 형식의 영화에서 각 단계마다 설정만 제시한 뒤 배우들과 함께 구체적인 대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크레딧에 공동각본가로 여섯 명의 배우 이름이 들어간 것은 정해진 대사 없이 즉흥적으로 현장에서 지어냈다는 뜻.
영화 도입부,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는 자막은 이 영화의 방향이 어딘지 잘 말해준다. 그들에게서 최선의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 극중 현장 책임자는 스태프들에게 “이 사람들은 여배우들이라고. 현장에서 계속 예쁘다, 예쁘다 해줘야 해. 알지?”라고 끊임없이 독려한다.
여배우들의 수다는 위험 지경을 넘나들지만 결코 상처를 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부분과 여배우들이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노선, 그 사이를 영화는 매끄럽게 유영한다. ‘여배우들’은 여배우들이 왜 예뻐야 하는지 안다. 여배우들을 사랑할 줄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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