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월넛크릭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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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월넛크릭의 겨울

[중도춘추]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창과 교수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2-11 20면
  • 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창과 교수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창과 교수
 겨울로 들어서며 월넛크릭(Walnut Creek)의 디아블로(Diablo) 산등성이에는 푸른 풀빛이 번져갔다. 여름을 지나며 말라있던 풀들이 멀리서 바라볼 때 사막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는데, 지난 10월 중순에 내린 비로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해 11월 중순을 넘어서며 푸른 초원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을 예감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한국의 경우라면 모든 나무나 풀이 제 빛을 거두고 씨앗 하나씩을 땅에 묻고 겨울잠으로 갈 시점에 저렇게도 푸른빛이라니! 그게 바로 이곳 버클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 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창과 교수
▲ 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창과 교수
 그동안 아들이 다니는 노스게이트 고등학교로 차를 달리면 동쪽의 디아블로 마운틴과 마주보게 되었다. 아침 7시 30분경에 해는 디아블로 산 위로 불쑥 솟아올라 눈에 정면으로 와 꽂혔다. 그 햇빛은 그동안 내가 만났던 태양 가운데 가강 강렬한 빛이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나는 이곳에 맞는 선글라스 하나를 사야했다. 그러나 10월 말경에는 아들의 등교시간에 해가 산 위로 나오지 않아 새벽의 느낌이 들었다. 11월 1일 이곳의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1시간이 늦춰졌다. 그날부터 등교시간에 맞추어 아침 태양은 다시 디아블로 산위로 강렬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그랬다. 12월로 들어서 아침저녁으로는 싸늘한 기온이 목덜미를 스치고 있다. 그럴수록 디아블로의 풀빛은 더 짙어가는 게 낯설기만 하다. 겨울로 열린 시간을 향해 푸른 풀들은 초록빛을 더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곳의 겨울은 섭씨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하니, 푸른빛으로 감싸인 버클리 그것이 이곳의 겨울이겠다. 겨울을 감싸 안은 푸른빛과 그 안에서 새롭게 초원을 펼쳐가는 겨울, 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이 세상 어디에도 봄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한 사회를 안다는 것, 다른 사회를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그 바닥을 들여다보아야 가능한 것인가. 얼마나 깊이 그 바닥에 가 닿아야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 가야만 우리에게 버클리는 제 심장을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 버클리에는 분명히 여러 개의 모습들이 함께 있다. 화려함과 기쁨 그 이면에 잠복하여 알 수 없는 깊은 침묵이 함께 흐르고 있다.

 버클리는 언제나 새로운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이 정상 범위 안에서라면 무한한 자유와 여유로 오겠지만, 그 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다가와 티켓을 발부한다. 우리는 언제나 가능과 불가능의 사이를 밟고 사는 게 아닌가. 이곳에 온지 3개월을 지나면서 버클리는 나에게 서서히 그 이면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집중해 있다가 나의 일상이 작은 규정을 벗어나는 순간, 가차 없이 다가와 티켓을 들이밀었다. 그것이 내가 버클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인가.

 이곳에 와서 우리는 겨울로 들어서며 서서히 버클리의 더 깊은 바닥으로 가닿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항시 우연과 필연 사이를 밟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연이며 필연일 것이다. 내가 버클리에 오게 된 것도 우리 가족이 이곳에 와서 1년을 살게 된 것도 모두가 다 필연이고 우연일 것이다.

 어디에나 겉모습과 속 모습은 따로 있고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모습을 다 보았을 때에야 우리는 어느 정도 그것을 이해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버클리에 와서 정확히 3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야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버클리의 거리에는 분명히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한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고요 속에서는 또 하나의 알 수 없는 냉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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