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노력, 공정하게 다루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신문 기사에 붙이는 선정적이고 주관적인 제목 역시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을 가져온 큰 요인이었다.
주로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스포츠신문이나 연예분야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에 가정에 배달되는 종합일간지들의 기사제목들도 본문의 내용을 침소봉대한 것들이 즐비하다.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작은 사안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과장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기사 본문에 없는 내용을 제목에 덧붙여서 허위기사로 몰리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신문사나 기자들의 입장과 다른 집단의 소식을 취재 보도할 때는 칼럼에나 어울릴 제목들이 스트레이트 기사에 스스럼없이 붙여진다. 취재원들의 이야기 중에서 `요거다' 싶은 인터뷰 내용이 있으면 맥락에 관계없이 그것들이 “따옴표” 안의 제목으로 자리 잡는다. 심한 경우에는 따옴표 처리하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고의인지 과실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럴 때면 사실적인 보도기사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기사를 빌미로 한 기자들의 주관적 칼럼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같은 기사라도 인터넷으로 서비스 할 때 그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신문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신문독자나 온라인 이용자들을 낚아보려는 그러한 제목 뽑기 술책이 오히려 신문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하고 공멸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는 신문들은 따옴표로 처리하는 제목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우리 신문의 경우 따옴표로 처리하는 것은 거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심지어 따옴표로 제목을 처리하면 그것이 마치 저널리즘의 객관보도나 공정보도 실현방식이라고 믿는 듯하다. 외국의 좋은 신문들은 객관보도와 공정보도를 위해서라도 따옴표로 제목을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며칠 전 유성의 한 호텔에서 한국 신문의 주관적 제목 달기와 관련한 세미나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신문편집 담당자들은 스트레이트 기사에 주관적인 제목을 붙이는 행위의 윤리적인 문제점과 법적 책임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누구나 쉽게 신문제목을 비판하지만 천자, 만자의 기사 본문 글을 단 `열 자'로 줄여야 하는 신문 제목 붙이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의 일이다. 열 자의 신문 제목은 화사하거나 더넘스러움을 피해 수수하고 단아해야 한다. 봄 바람 마냥 부드러우며 동시에 가을 서리처럼 강해야 한다. 간결 함축적이어야 하고 윤리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피해야 좋은 제목이라고 한다. 분명 신문사의 편집담당 기자들의 역량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신문 독자들이 신 새벽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펼쳐서 기사를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은 바로 편집담당자들이 열 자로 만들어 붙여 준 신문제목이 결정적이지 않은가.
오프라인 신문독자들의 시선과 온라인 이용자들의 `눈팅'을 한 순간 낚는데 허발하지 말고 밋밋하더라도 기사 본문의 내용을 찬찬히 톺아보고 거기 맞는 내용을 제목으로 처리하는 것이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할 것이다. 그것이 오래도록 독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떨어진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이라고 믿는다. 세종시 관련 보도를 다룰 때조차 신문제목 달기의 저널리즘 원칙을 굳게 지켜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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