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아무튼 차로 가면 7~8분이지만 걸어가면 30분이 족히 걸릴 길을 추운 날씨에 쌀자루를 끌고 가실 것을 생각하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쌀 자루를 들어서 차 뒷자리에 싣고, 손수레는 접어서 의자 사이에 밀어 넣고 할머니를 뒷자리로 모셨다.
“아니 저 무거운 쌀을 어디로 가져가시는 거예요?”
“매년 이맘때면 딸네 집에 쌀을 부쳐줬거든. 금년에도 좀 부쳐 주려고.”
요즈음 쌀을 전기로 말려서 쌀이 맛이 없을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풀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묵은 정부미에 비하면 그래도 햅쌀인데”라고 힘없이 뇌까리신다.
노인네가 옛날 못 먹던 때를 생각해서 쌀을 이웃에게서 팔아 딸에게 부치지만 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귀찮은 일 일지도 모른다. 좁은 아파트라면 80㎏ 쌀을 쌓아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을지 모른다. 쌓아놓고 먹다보면 쌀이 눅어 밥 맛이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차라리 택배비에 조금 더 보태면 동네 쌀가게에서 20㎏로 쌀 한 포대를 주문하면 모든 일이 간단하고 편리할 수도 있다.
영화 `집으로'에서 나온 손자와 할머니의 얘기처럼, 이렇게 노인네의 호의가 젊은 세대에게는 부담과 불편으로 전달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일을 한순간 불편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사실 범위나 규모를 확대해 보면 이러한 세대간에 부담이나 불편함을 주는 갈등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얼른 결혼해서 자식 낳아 안겨주길 바라는 부모와 결혼을 마냥 미루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이 단순히 어느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에 맞물리는 낮은 출산율은 어느 순간에 절망적인 사회문제로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
자식들의 진학과 취업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하는 부모들과 그렇게 고생한 것을 심리적 압박으로 느끼며 공부하고 취업을 하려는 자녀들의 갈등이 사회 구조적으로도 재생산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단순히 세계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닐 수도 있다. 50대 직장인 한사람이 퇴직하면 20대 젊은 사람을 최소한 두세명은 고용할 수 있다. 50대가 혼자 벌어서 자녀들을 취업 뒷바라지를 하는 대신, 50대의 급여를 반으로 줄이고 그 급여를 20대에게 주는 것은 어떨까? 20대 젊은이는 미래을 위한 직장을 얻고, 50대는 자녀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는 교환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할머니가 딸에게 부담스러운 쌀을 부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책임이 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는 것이 사리에 맞고, 부모 도리에도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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