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필]부담이 되지 않아야 하는 부모세대의 책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권선필]부담이 되지 않아야 하는 부모세대의 책임

[목요세평]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2-10 20면
  •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아침 출근길 동네 어귀에서 손수레에 쌀자루를 끌고 나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추운 날씨에 붉어진 얼굴로 힘겹게 손수레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좁은 길에 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비껴 서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차창을 내리고 “추운데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제 출근하시나 보네. 이 쌀을 좀 부천에 있는 딸네 집에 보내려고.” 추위에 입이 얼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일흔을 넘긴 나이에 가족도 없이 동네 빈집에 들어와 홀로 사는 할머니다. 집이 없어서 여기저기 시골 동네를 떠돌다가 마침 우리 동네 빈집 얘기를 듣고는 무작정 들어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동네 분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자식들을 다 키워서 내보내고 혼자 사시던 노인 내외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어서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빈집이 된다. 이렇게 빈집이 되고 나서 남은 자녀들 사이에 적당히 합의가 되면 집이 팔린다.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그냥 빈집으로 남아있게 되는 데 바로 그런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차로 가면 7~8분이지만 걸어가면 30분이 족히 걸릴 길을 추운 날씨에 쌀자루를 끌고 가실 것을 생각하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쌀 자루를 들어서 차 뒷자리에 싣고, 손수레는 접어서 의자 사이에 밀어 넣고 할머니를 뒷자리로 모셨다.

“아니 저 무거운 쌀을 어디로 가져가시는 거예요?”

“매년 이맘때면 딸네 집에 쌀을 부쳐줬거든. 금년에도 좀 부쳐 주려고.”

요즈음 쌀을 전기로 말려서 쌀이 맛이 없을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풀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묵은 정부미에 비하면 그래도 햅쌀인데”라고 힘없이 뇌까리신다.

노인네가 옛날 못 먹던 때를 생각해서 쌀을 이웃에게서 팔아 딸에게 부치지만 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귀찮은 일 일지도 모른다. 좁은 아파트라면 80㎏ 쌀을 쌓아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을지 모른다. 쌓아놓고 먹다보면 쌀이 눅어 밥 맛이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차라리 택배비에 조금 더 보태면 동네 쌀가게에서 20㎏로 쌀 한 포대를 주문하면 모든 일이 간단하고 편리할 수도 있다.

영화 `집으로'에서 나온 손자와 할머니의 얘기처럼, 이렇게 노인네의 호의가 젊은 세대에게는 부담과 불편으로 전달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일을 한순간 불편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사실 범위나 규모를 확대해 보면 이러한 세대간에 부담이나 불편함을 주는 갈등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얼른 결혼해서 자식 낳아 안겨주길 바라는 부모와 결혼을 마냥 미루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이 단순히 어느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에 맞물리는 낮은 출산율은 어느 순간에 절망적인 사회문제로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

자식들의 진학과 취업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하는 부모들과 그렇게 고생한 것을 심리적 압박으로 느끼며 공부하고 취업을 하려는 자녀들의 갈등이 사회 구조적으로도 재생산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단순히 세계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닐 수도 있다. 50대 직장인 한사람이 퇴직하면 20대 젊은 사람을 최소한 두세명은 고용할 수 있다. 50대가 혼자 벌어서 자녀들을 취업 뒷바라지를 하는 대신, 50대의 급여를 반으로 줄이고 그 급여를 20대에게 주는 것은 어떨까? 20대 젊은이는 미래을 위한 직장을 얻고, 50대는 자녀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는 교환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할머니가 딸에게 부담스러운 쌀을 부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책임이 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는 것이 사리에 맞고, 부모 도리에도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