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희재 둔산경찰서 수사지원팀장 |
할 수 없이 고소인 조사를 하고 상대방에게 출석을 요구하여 확인해본 결과 남편 수술비에 사용하려고 동창생으로부터 돈을 빌려 그 돈을 갚으려고 전셋집을 내놓았단다. 그런 사실을 친구에게 사전에 문자메시지로 알려주었단다. 그러함에도 고소인은 문자메시지로 연락받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친구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면서 고소장을 제출한것이다. 절친한 친구사이의 소통부족이 낳은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늘도 경찰서에는 수많은 사연이 담긴 고소장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접수된다.
사소한 이웃간 분쟁으로 억울하다는 사람, 빌려준 돈을 못받았다는 사람, 곗돈을 떼였다는 주부, 남편을 못믿겠으니 조사해달라는 사연, 누구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니 처벌해달라는 사건 등등. 금액이 단돈 몇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되고 사연도 천태만상이라서 마치 세상살이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을 접수하는 담당 경찰관은 늘상 접하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 고소장을 제출하기까지 수없이 고민을 했을 사건당사자 입장에서는 하나하나의 고소장마다 나름대로의 애환과 사정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하기 까지의 당사자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자는 마음으로 고소장을 검토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소사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경찰에서는 무분별한 고소장 제출을 억제하기 위해 민사사안이 명백하거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 등 수사 실효성이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접수단계에서 반려를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올해 둔산경찰서에서 반려한 사건이 작년보다 500여건 증가한 3000건이나 된다. 만약 그 사건을 고소인 요구대로 접수했다면 고소인과 그 상대방, 그리고 관련 참고인 등 아무리 적어도 1만명 이상이 경찰서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을 것이고, 또한 그에 따라 수사경찰관들이 범죄와 별로 상관도 없는 민사사안에 매달려 조사를 하는 수사력 낭비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 낭비인 셈이다.
위와 같이 반려된 사건을 제외하고도 대전둔산경찰서에 금년 1월부터 11월까지 정식접수되어 처리된 고소사건이 6000건에 이르고 있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절반이 훨씬 넘는 수가 범죄혐의 없는 단순 민사사안으로 밝혀진다. 사전에 당사자들끼리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졌다면 경찰서에 오지 않을 사건들이다.
우리나라의 고소건수 비율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에 비해 무려 203배가 많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소통부재와 타협에 의한 해결능력 부족이 고소장 제출건수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오늘도 우리 경찰서에는 막무가내식으로 일단 고소장을 접수하고 상대방을 불러 조사부터 해달라고 떼를 쓰는 고소인들이 여전하다. 아마 경찰에서 연락이 가면 상대방이 주눅이 들어 얼마간의 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하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정작 서민경제를 해치는 악질 경제사범 수사에 경찰 수사력을 치중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에 따른 피해가 고소란히 나와 우리 이웃들에게 돌아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사회에 만연된 소통부재 해소와 서로간에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여 타협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아쉬울 따름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