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규] 한복, 소통과 배려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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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규] 한복, 소통과 배려의 디자인

[문화초대석]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1-30 20면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오치규 충남대 예술대학 교수
기모노의 물결 속에서 빛나던 한복

영화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박사 학위 수여식은 그 의미나 감회가 참으로 남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당사자도 그러하지만 특히 학위 수여식을 가득 메운 연미복 물결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식장의 의미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식장의 패션은 참으로 장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동서양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익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는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감격에 겨운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의 오랜 고학을 끝내고 박사 학위를 받는 니혼 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의 일이다. 일본에서도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 학생들은 연미복을 차려 입기도 하지만 서양과 다르게 일본의 한복이라 할 수 있는 기모노를 입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잠깐 입고 벗을 행사 유니폼이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이미 학위 수여식 행사의 유니폼으로 서구문화에서 비롯된 연미복이 일반화된 현대에 전통의상의 몸을 빌려 오랜 전통과 가치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와 분위기를 허용하는 일본 사람들의 유연함을 알고 나는 무척 부러워졌던 것이다. 이런 부러움이 컸던지 나는 기모노 대신 한복을 입기로 하고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던 아들 녀석에게까지 한복을 입혀 학위수여식에 참석했다.

한편으로는 오래도록 풀지 못하고 있는 두 나라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의식해 혹시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으나 이는 순전히 나만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부자는 행사 내내 따가운 눈총이 아니라 감탄의 시선을 몸소 느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행사장에 넘치는 연미복과 기모노의 물결 사이로 홀연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한복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몸이 사는 옷, 몸이 죽는 옷

요즘은 주로 꽉 조이는 옷들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캠퍼스나 시내를 거니는 여학생들이나 사람들의 패션을 보면 레깅스나 스키니 진 또는 꽉 조이는 부츠처럼 주로 우리 몸을 조이는 패션들이 두드러진다.

이 역시 시대의 변화며 개성의 표현이니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몸의 건강을 생각하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몸을 너무 꽉 죄는 옷들은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거나 다리의 혈액이나 체액 순환을 방해해 하지 정맥류나 부종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복은 이와 다르다. 선과 색, 질감 등 디자인 적으로도 화려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화려함이며 기능적으로도 몸과 옷 사이사이 넓고 여유 있는 품을 두어 몸과 옷 사이에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꽉 조이고, 틈을 막고, 몸 보다 저를 먼저 드러내는 서양의 의복과 한복은 완전히 결이 다른 디자인을 담고 있다. 한복은 소리 없이 소통하고 배려하는 `살림'의 의복인 것이다.



한복의 소통과 배려가 필요한 사회

세종시 논란으로 시끄러운 요즘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소통과 배려를 입에 담는다. 하지만 소통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하는 것이고 통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전제된다. 한복의 매력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에서 온다. 대립하는 사회에 필요한 건 직선적 공격이 아니라 곡선적 어울림이다. 대립하는 직선은 끝없는 평행을 달리지만 함께 어울리는 곡선은 끝없는 순환의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로 사는 법이다.

곳곳에서 소통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걸 보니 우리는 소통이 잘 안 되는 사회인가 보다. 꽉 조이고 틈을 막는 옷을 벗기고 한복 같은 사회를 디자인 하자. 우리 사회에 넓고 여유 있는 품을 만들자. 진정한 소통과 배려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이다. 다시 한복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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