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세종시 알리바이 증명은 동일 사건에 다양한 진술들이 경합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을 닮았다. “사실이 아니라 해석만 존재할 뿐”(니체)이랄까. 크로노포비아(시간공포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포화상태의 수도권을 근본 수술한다는 대의는 수도를 쪼개는 정신분열로 비하된다. 서울의 기득권층, 오늘날의 경화거족(京華巨族)에 의해 나라 존망의 위기처럼 철저히 오역되고 있다.
명품 행정도시 약속은 이처럼 혼인빙자 간음을 연상케 하는 식언이 됐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총리, 그 옆에 민관합동위원회를 들러리 세워 막다른 길에서 개구멍 찾듯 서둘러댄다. “나 내복 입었다”(대통령) 선창에 “저도 그랬다”(총리) 복창하듯 끝내버리려 한다. 기업특혜 블랙홀, 재벌특혜도시라는 비판을 듣는 세종시 부재 증명이 어이없게도 역차별 논란과 가치배분의 왜곡을 낳는다. 수사학적 왜곡만은 아니다.
길바닥 논리에 이어지는 길 이야기다. 한양(서울) 기점으로 의주 가는 길은 서도, 서수라 가는 길은 북도, 강진 가는 길은 삼남도, 부산포 가는 길은 남도 또는 영남대도라 일컬었다. 이 길들로 파발이 오가고 관리가 부임했다. 서도·북도 따라 오랑캐도 오고 영남대도 따라 문경새재 넘어 왜군도 왔다. 지난 600년, 모든 길은 권력과 돈과 사람이 모인 한양으로 통했다. 행정도시는 유령도시라는 으름장은 이러한 절대 명언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일핵주의의 오만에서 나온다.
진짜 이유는 행정 공백을 걱정해서가 아닌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 규정된 행정 기능을 빼기 위해 녹색·기업·교육·과학·경제 등으로 급조한 모둠도시는 티가 나도 너무 난다. 비빔밥도 이런 비빔밥 없고 잡탕도 이런 잡탕이 없다. 최소한의 가치나 철학마저 없어 보인다.
`국익'에 맞서 `국익'을 칭하지는 않겠다. 모든 길은 서울로도 통하고, 행정도시와 혁신도시 건설로 세종시와 모든 지방으로도 통해야 하며, 그 길의 끝은 막다른 절망의 길이 아니어야 한다. 1876년 개항 이후 만든 신작로를 타고 문명이 흘러왔다. 오프로드처럼 보일지 모르는 국가균형발전, 국가경쟁력으로 가는 길도 그러할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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