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세종시 길목의 막다른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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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세종시 길목의 막다른 골목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1-26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옛길에 유난히 막다른 골목이 흔한 이유? 한양 천도를 마친 태조 이성계가 공신들에게 땅을 나눠줬는데, 높은 벼슬아치부터 명당자리를 선점해 집을 짓고 큰길, 중간길에서 제 집 앞까지만 길을 닦았기 때문이란다. 고약한 심보다.

슈퍼 이슈 세종시 논란 속에 예전의 그 `막다른 골목'을 생각하게 된다. 행정부처 이전 전면 백지화로 몰아가는 회의론 중 그나마 좀 그럴듯한 것은 세종시가 서울에서 왕복 서너 시간 걸린다는 가설이다. 한 여당 의원은 세종시 출퇴근 `체험학습'까지 다녀와서는 “국민 세금을 길바닥에 5시간 쏟아 붓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해진 답을 토해낸다. 만사형통의 부적으로 붙이는 `국익'도 눈에 익고 귀에 익은 본새다.

말하자면 세종시 알리바이 증명은 동일 사건에 다양한 진술들이 경합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을 닮았다. “사실이 아니라 해석만 존재할 뿐”(니체)이랄까. 크로노포비아(시간공포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포화상태의 수도권을 근본 수술한다는 대의는 수도를 쪼개는 정신분열로 비하된다. 서울의 기득권층, 오늘날의 경화거족(京華巨族)에 의해 나라 존망의 위기처럼 철저히 오역되고 있다.

명품 행정도시 약속은 이처럼 혼인빙자 간음을 연상케 하는 식언이 됐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총리, 그 옆에 민관합동위원회를 들러리 세워 막다른 길에서 개구멍 찾듯 서둘러댄다. “나 내복 입었다”(대통령) 선창에 “저도 그랬다”(총리) 복창하듯 끝내버리려 한다. 기업특혜 블랙홀, 재벌특혜도시라는 비판을 듣는 세종시 부재 증명이 어이없게도 역차별 논란과 가치배분의 왜곡을 낳는다. 수사학적 왜곡만은 아니다.

옴니암니 시간으로 따져보자. 청와대에서 과천 정부청사에서 1시간 남짓 거리다. KTX로 천안아산역(30분)을 거쳐 세종시(30분)의 종합청사(30분)까지 1시간 30분 걸리니, 30분 차이가 비효율이라고 치자. 수도권 땅값, 집값, 환경오염, 교통혼잡 비용으로 연간 28조원이 드는 과밀화 부작용은 효율로 어찌 설명하겠는가. 부산이나 광주에서 세종시 가는 시간이, 서울 가는 시간보다 더 빠른 것은 그럼 효율 아닌가.

길바닥 논리에 이어지는 길 이야기다. 한양(서울) 기점으로 의주 가는 길은 서도, 서수라 가는 길은 북도, 강진 가는 길은 삼남도, 부산포 가는 길은 남도 또는 영남대도라 일컬었다. 이 길들로 파발이 오가고 관리가 부임했다. 서도·북도 따라 오랑캐도 오고 영남대도 따라 문경새재 넘어 왜군도 왔다. 지난 600년, 모든 길은 권력과 돈과 사람이 모인 한양으로 통했다. 행정도시는 유령도시라는 으름장은 이러한 절대 명언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일핵주의의 오만에서 나온다.

진짜 이유는 행정 공백을 걱정해서가 아닌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 규정된 행정 기능을 빼기 위해 녹색·기업·교육·과학·경제 등으로 급조한 모둠도시는 티가 나도 너무 난다. 비빔밥도 이런 비빔밥 없고 잡탕도 이런 잡탕이 없다. 최소한의 가치나 철학마저 없어 보인다.

`국익'에 맞서 `국익'을 칭하지는 않겠다. 모든 길은 서울로도 통하고, 행정도시와 혁신도시 건설로 세종시와 모든 지방으로도 통해야 하며, 그 길의 끝은 막다른 절망의 길이 아니어야 한다. 1876년 개항 이후 만든 신작로를 타고 문명이 흘러왔다. 오프로드처럼 보일지 모르는 국가균형발전, 국가경쟁력으로 가는 길도 그러할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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