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아름다운 이름',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시 모음'. 그리고는 사서인 내가 처음 보는 손바닥만한 월간 시 잡지 한묶음을 선물로 주셨다. 그 당시 시간없다는 핑계로 전국 독서평균을 깍아 먹었던 난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럽게 책을 받아왔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이제야 그 시들을 꺼내어 놓게 되었다. A4용지는 가장자리가 이미 누렇다.
이 시를 펼치게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 준 책이 바로 안도현 시인의 시모음집인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다.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배원 사업 중 2007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안도현 시인이 발송했던 시들을 묶었다.
안도현 시인이 고른 시들은 어떤 시들일까? 매주 다른 작가의 다른 시를 고르기 위해 수도 없는 시집들을 꺼내 보았을 시인의 맘고생은 또 어떠했을까?
안도현 시인이 고른 시들 중 술자리에서도 웃음을 자아냈던 몇 편의 시들을 골라봤다.
오탁번 시인의 `폭설'은 웃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 시를 차마 읽어주기도 남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밌는 걸 어찌하랴.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로 일어난 뚝심 좋은 이장의 동네방네 마이크 소리와 민중적인 에로티시즘이 결합한 이 시를 안도현 시인도 일독하기를 권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심장 쿵쿵 뛰는 `아이를 키우며/렴형미',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아들이 오줌 누이며 가슴 뭉클한 `쉬/문인수', 사랑과 설레임이 있는 춘천으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유안진'. 즐거운 시 타령은 끝이 없다. 오랜만에 시를 접하시는 분들은 인상 써지며 시를 대하지 말고 일상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여기 이 시들과 만나보기를 바라며 이정록 시인의 시 한편을 오늘 당신에게 선물로 보낸다.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할 시인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봤습니다.” “있던 자리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겠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정을 백 천 번 감안해서리 우리 측에서 갖다 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동무께서 갖다놓을 수도 있겠디만, 고 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네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쪼가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북측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는 가슴 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불사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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