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곤]`간판'에서 세종시까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전창곤]`간판'에서 세종시까지

[시사에세이]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1-24 20면
  •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진부한 구절이 요사이 나의 모습을 적확히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은, 며칠 전 한 일간지의 기자가 그녀의 시평에서 거론한 간판이야기 때문이다.

▲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
삼선교를 지나다 목격한 “예쁜 색깔들의 아담하고 정갈한 간판들”의 모습이 그녀의 사색의 시작이었고, 간판의 제일의(第一義)적 의미를 떠나 주홍글씨의 무게만치나 각 개인의 이마에 각인된 또 다른 간판의 폐해를 암시하기도 한 맛깔스런 글이었다.

귀국 초, 새롭게 대면한 우리사회의 이기심이 상당한 충격이었고 이러한 행태의 일상적인 확인이 항시 길거리에 즐비한 거대한 간판들이었던 점을 회상하면, 이제는 이 간판들의 존재가 길찾기의 소중한 단서가 되고 그들이 뿜어내는 현란한 조명은 점차 뿌연해지는 나의 시력을 보완해 주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는 요즈음의 나의 모습은 주위환경에 속절없이 함몰되는 나약한 소시민의 전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문을 연 대흥동 문화원 분원의 적막함을 조그만 간판의 탓으로, 또는 이웃동네의 불야성과 비할 바 없는 몇몇 초라한 전등의 탓으로 치부해보려는 유혹이 새록새록한 요즈음의 모습에야.

정보제공과 홍보가 간판의 두 가지 대표적인 기능이라면, 우리의 간판들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근시안이고, 상상력이 심각하게 결핍된 집단이라는 병적인 우려에서 출발한다. 모든 활자들은 극대화되고, 업태를 추호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친절한 그림이 동반되는 대다수의 간판들은, 이러한 배려의 산물이다. 게다가 값비싼 전기세를 무릅쓰며 간판의 형광등 숫자를 배가하는 이유는, 하릴없이 배회하는 무심한 이들에게도, 이 불빛의 세례를 피할 수 없게 하여, 이 유익한 정보를 공유케 하려는 가상한 노력이 배어 있는 것이다.

“삼선교”의 예가 우리 도시에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친절한 노력이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이러한 친절함은 때때로 예상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근시안적인 시각과 천편일률적인 사고는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덕행의 하나일 수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월말에 어김없이 날아오는 카드회사의 변제요구는 때때로 중대한 시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판이 이렇게 과장과 호도를 이용하여 우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한다면, 일부 사람들이 이마에 달고 다니는 또 다른 간판은 그 크기로 승부하려 하지 않는다. 작으면 작을수록,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위력은 배가된다.

특정학교, 특정한 직업, 더 나아가 출신지역(본인들의 선택권이 전혀 없는 이 항목이 선거 때마다 우리사회의 대사를 가르는 중대한 요소로 부각되는 점은, 그 감정적 기저로 인해, 가장 시급히 해소되어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다)의 위력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과 그 희소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우선”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충청지역의 표를 의식해 급조된 행정복합도시가, 예상했던 대로 복합적이기보다는 복잡하기만 할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행정부의 이전을 약속했던 이들의 입에서, 여전히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위 기관들의 이전은 어불성설이고, 대신 그에 상당하는 기관들의 이전을 계획한단다.

몇몇 재벌그룹의 계열사 이전을 제외한다면, 그 계획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가 특정대학교의 한 단과대학의 이전이란다. 이 대학의 한 단과대학이 10여개의 행정부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오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정말로 그들은 몇 백 개의 일자리와 몇 백 명의 일류대학생들의 존재가 실망한 주민들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