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살던 주민들 변해가는 자연에 한숨만... 마을앞 제방 쌓이자 을씨년스러워진 삶의 터전

강물처럼 살던 주민들 변해가는 자연에 한숨만... 마을앞 제방 쌓이자 을씨년스러워진 삶의 터전

<비단길 천리에서 상생을 찾다> 18.강변 마을, 삶과 사람 이야기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1-20 12면
  • 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전북 무주군 무주읍의 섬이 아닌 섬마을 내도리(內島里). 이곳으로 들어가자면 무주 읍내를 지나 마을 사람들이 ‘앞섬다리’라 부르는 내도교를 건너 가야한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만해도 내도리 사람들은 무주 읍내로 가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다녀야 했다. 때문에 이 마을은 가슴 아픈 사연도 간직하고 있다. 앞섬다리 입구에 세워진 시비는 그 사연을 이렇게 전한다.

 ‘세찬 물살이 달려와/ 그 귀한 목숨을 삼켜 갔으니/ 엄마엄마 숨차게 허덕이다가/ 애처롭게 사라진 넋들이여…….’

 30여년 전 나룻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다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마을 주민 열 여덟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 시비다. 당시 희생자 대부분은 학교에 갔다 돌아오던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마을 앞에는 다리가 놓아졌다. 지금의 내도교는 이런 아픈 사연을 품고 지난 2001년 놓아진 것이다.

 “아주 그때 난리가 났었지. 애들이 숱하게 죽어나갔으니 마을이 발칵 뒤집혔지. 그래서 저 다리가 놓인거 아녀.”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이규선(82)씨의 말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는 그는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 듯 말을 잇는다.

 “옛날에야 다 걸어서 건너 다니고, 배 타고 다니고 그랬지. 다리라고는 동네 사람들이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게 전부였으니까. 아침에 걸어서 건너갔다가도 물이 불면 배타고 들어오고 그랬지.”


■ `경치 좋은 앞섬과 뒷섬 마을

이곳 내도리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무주·진안·장수 등 금강 상류의 네 고을 가운데서도 특히 경치가 좋은 지역으로 꼽은 곳 중 하나다. <택리지>는 `전도(前島)와 후도(後島), 죽도(竹島)'라는 세 곳을 금강 상류의 비경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전도와 후도가 바로 이곳 내도리에서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 이르는 앞섬과 뒷섬 지역이다.

실제 이 마을은 동네 어귀를 휘감아 도는 금강의 물줄기가 기암절벽을 치고 나가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내도리라는 지명 역시 이러한 빼어난 비경 아래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이 마치 내륙속의 섬 같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내도리는 지금도 80여 가구가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비교적 큰 강가 마을이다.

예로부터 이곳에는 농토가 많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강변의 정취를 벗 삼아 지금껏 삶을 영위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도 옛 말이 되가고 있다. 여름이면 강가에는 물놀이를 즐기러 찾아온 외지 손님들도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수려한 백사장에 잡풀만 가득하다. 바쁜 일손을 잠시 거두고 천렵을 즐기던 주민들도 강에서 멀어졌다.

천연기념물 어름치의 서식처로 유명했던 이곳에서 지금은 어름치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상류에 용담댐이 들어선 이후 수질이 나빠지고, 불어난 물이 넘나들던 마을 앞에는 제방이 쌓인 탓이다. 이규선씨는 “그 많던 어름치도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을 사람들은 이제 강에서 잡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또 “물이 많아야 깨끗해지는데 위쪽에 소수력발전소다 댐이다 이런 게 생기다보니 물이 옛날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도리에서 차 한대도 제대로 지나기 힘들 정도로 좁고 험한 비탈길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면 방우리가 나온다. 방우리는 마을 초입에서부터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스칠만큼 오지 중의 오지다. 이중환은 금강 상류 마을들이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난리를 피할 만한 곳이 가장 많다고 했으니, 바로 방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10여 호가 강줄기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입구에 내걸린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표지판은 정말 전쟁이 나도 모를 법한 이 마을의 지리적 여건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방우리는 행정구역 상 충남 금산군 부리면에 속한다. 하지만 무주 땅을 밟지 않고는 이곳에 들어설 수 없다. 금산에서는 이곳으로 향하는 길이 없으며 무주에서 내도리를 거쳐 들어가는 비탈길이 이 마을을 외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민원 서류 하나라도 떼려면 반나절은 걸려서 무주를 거쳐 금산까지 가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주민들은 차라리 마을을 무주군에 편입시켜 주길 원한다.

그러나 지자체 간에 경계를 나누는 일이 그리 쉬이 결정될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거 때만 되면 금산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놔주겠다는 것이 단골 공약이 된다. 금산에서 이곳으로 길을 내자면 마을 앞을 가로 막고 선 강줄기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고, 이 또한 항상 논란거리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강을 벗삼아 살아갈 수 있는 이점 때문 일 터다.

■ 금강 상류 마을, 실학자 이중환이 꼽은 살기 좋은 땅

금강 유역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땅으로 꼽혔다. 풍부한 물과 옥토를 중심으로 인류가 삶을 가꿔 나가기에 최적지였던 셈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 「복거총론」에서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 지역에 이어 무주·진안·장수·금산 등 금강 상류 일대를 전국 제일의 거주지 중 하나로 꼽는다.

지금도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상류 지역에는 주민들이 대대손손 일가를 이루며 삶을 일궈 나가는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방우리처럼 아직 인간의 때가 덜 묻은 오지마을을 비롯해 저 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강변 마을들이다. 방우리에서 흘러 나온 강 줄기는 금산군 제원면 수통리로 이어진다.

물론 강을 건너지 않고 방우리에서 수통리로 이어지는 길은 없다. 이곳에서 금강은 `적벽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푸른 강물과 붉은 빛을 띠는 기암절벽이 연출하는 빼어난 절경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이 일대에 본래 수통리라 불리던 마을과 도파라 불리는 마을이 강변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이 두 마을을 지난 물줄기는 용화리에 이른다. 마을 뒷편 언덕에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마을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용화리 사람들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금강을 `용강(龍江)'이라 부른다. 마을의 형국이 어린 용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 건너 용화산을 배경삼아 다슬기를 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강변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 역시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이 예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물이 옛날 같지는 않지. 전에야 그 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채소도 씻어 먹고 했는데. 용담댐 생긴 이후로는 물이 눈에 띠게 줄고 탁해졌지. 낚시꾼들도 많았는데 잡히는 고기도 예전같지는 않을 걸.”

마을 어귀에서 햇곡식의 나락을 말리던 김현칠(79)씨의 말이다. 용화마을 아래로는 닥실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강을 건너 영동을 거치면 경상도로 향하고, 반대로는 금산을 지나 호남으로 이를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로 삼남의 사람들이 넘쳐나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 호젓한 강변마을 호탄리·감동마을

지금은 쇠락한 나루터의 향수를 뒤로하고 강은 다시 영동으로 흐른다. 영동의 산세와 어우러진 금강은 `양산팔경'을 빚어내고, 그 비경 아래로 여러 강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영동군 양산면 호탄마을은 강을 따라 마을로 향하는 길 자체가 객(客)의 발길을 붙잡는 한 폭의 그림이다.

이 마을 역시 강변 마을 답게 강에 얽힌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 옛날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청년이 병들어 누운 부친이 한 겨울에 딸기를 찾자 이를 구해 돌아오던 중 날이 저물고 강이 얼어붙어 건널 수 없게 되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을 이름도 호랑이 여울, 즉 호탄(虎灘)이라 불리게 됐다.

이 마을에는 여느 강변 마을 처럼 마을 앞으로 너른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저류지 역할을 하던 습지도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방이 높게 쌓이면서 습지는 농토로 변했고, 금빛으로 반짝이던 모래사장도 주민들의 삶에서 멀어졌다.

영동을 지나 옥천에 이르러서는 강변 마을을 찾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마을이 대청댐 건설로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이는 보다 상류쪽인 진안군 사정도 마찬가지다. 용담호에 수몰돼 사라진 마을이 많기 때문이다.

진안군 용담면 감동마을은 상류로 발길을 돌려 용담댐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첫 강변 마을이다. 용담면 소재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 감동교를 지나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출렁이는 금빛 물결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뚝방 길을 따라 들어서면 강가에 내려앉은 호젓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역시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진안으로 나가기가 힘들어 대부분이 무주로 학교를 다녔다. 지금의 감동교가 놓아진 자리에는 마을 사람들이 섶다리를 놓아 겨우 강을 건너 다녔다. 감나무가 많은 동네라 `감동(甘洞)'이라 불린다. 지금의 마을은 제방으로 인해 강과 분리돼 있다. 강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제방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금빛 모래가 반짝여야 할 강변에는 풀이 무성하다. 댐이 생긴 이후 빚어진 현상이다.

감동마을 주민들에게는 요즘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마을 앞 제방을 높이려는 계획 때문이다. 주민들은 제방을 더 높이면 마을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마을 입구에는 제방 공사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 오래도록 강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마을이 강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판이다.

감동마을 이장 김기원(46)씨는 “이미 2002년께 마을 앞으로 높게 쌓여진 제방으로 강과 함께 살아 온 주민들의 생활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제방을 더 높이 쌓으면 농경지 피해 뿐 아니라 마을이 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강의 물줄기에는 굽이굽이 마다 숱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 살기 좋기로는 으뜸이라는 금강 상류의 마을들, 주민들이 여지껏 그곳을 지키며 강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이유를 되짚어 볼 일이다./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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