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로부터 멸시를 받던 소년이 의붓 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집을 뛰쳐나온다. 급한 마음에 뛰어든 동네 빵집은 놀라운 마법의 세계였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빵집이지만, 그 곳에서는 사람들의 주문에 따라 마법의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지음 / 창비) |
유년의 상처와 어두운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며 사는 소년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여러 번 중얼거린다.
“나는 단지 거기 있었을 뿐인데, 단지 거기 있었을 따름인데”
어린아이여서, 또는 독립할 능력이 없는 청소년이었기에 가족관계에서 빚어지는 상처와 그럼에도 견딜 수밖에 없는 소년의 상황이 이 독백을 통해 전해진다.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상처가 나면 난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그런 견디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처지에 새삼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작가는 소년의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지.”
작가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우린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틀릴 가능성이 더 많은 선택들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와 파랑새는 소년에게는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자 쉼터였다. 소년은 상처를 치유 받고 든든한 버팀목에 기댈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너무 큰 상처였기에 묻어두고 넘어갔던 유년의 기억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된다. 하지만 소년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민을 느낀 마법사는 희귀한 타임 리와인더를 선물로 준다.
소년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다. 나에게 타임 리와인더가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을까?
누구나 살아오면서 정말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되돌아갔을 때(물론 현재의 기억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때 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에 와 있는 나를 배제하고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다. 고통스런 현실로부터 도망치느냐, 혹은 껴안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판타지와 소년의 성장이란 두 가지 소재로 잘 반죽해 달콤한 케이크처럼 내놓은 작품이었다.
제2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색다른 소재와 이야기로 청소년 문학의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가 무겁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은 작가의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그리고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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