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
UC 버클리에 와서 563회의 한글날을 맞이하였다. 미국에 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에서는 사라진 한글날이 나에게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발행되는 `중앙일보', `한국일보'등에도 한글날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기사가 났다. 얼마 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한글사랑회' 모임에 초대되어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은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서 다양한 관심사를 나누고 한글교육단체를 물질적으로도 후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 모임에서는 지난 7월에 `윤동주문학의 밤'을 열어서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당일에는 독서모임의 대표가 체험을 통한 독서와 독서모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며 발표 내용이 상당히 과학적이며 체계적이었다. 이어서 몇 명의 시인이 시낭송을 하였고, 나는 특별 손님으로 초대되어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하고 나의 시 한편을 낭송하였다.
나는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에 결국 우리들은 기록에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몇 가지의 예를 들었다. 이렇게 그날의 주요한 관심 내용은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에 있는 이태리 식당에서 가진 이 모임은 와인을 곁들여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애했으며, 한국에서 달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도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미국의 곳곳에는 한국학교 또는 한글학교가 개설되어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일부 학교에는 성인반이 개설되어 미국인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어 한국어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 이민 사회 내에서의 한국어교육 현실은 실로 안타까운 점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한인 2세들의 한글문맹에 대해서 크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UC 버클리 한인 학생들은 우리말을 잘 구사했다. 이민을 온 그들의 부모가 한국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배우고 익힌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그 외의 젊은이들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나 그 다음 세대에 가서는 한글이 정말 전수될 수 있을 지 조차도 의문이라는 판단이 들기도 하였다.
최근 USC와 UCLA의 한국어 강의를 조사하여 “주춤하는 한국어, 열기 뿜는 중국어”라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한국어와 중국어의 강좌수가 11대 31로 열세에 놓인다는 보고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중국어 강의의 인기는 높아지는 반면에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지고 있다는 진단인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끝까지 중국어를 지킨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일본어를 버리고 영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들은 그 중간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이곳 수필가 한분의 말이 나의 귀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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