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쩍 벌어지는 볼거리… 사람 냄새가 없다

  • 문화
  • 영화/비디오

입이 쩍 벌어지는 볼거리… 사람 냄새가 없다

■2012 감독:롤랜드 에머리히. 출연:존 쿠색, 아만다 피트, 우디 해럴슨

  • 승인 2009-12-28 15:01
  • 신문게재 2009-11-13 11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지구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안 햄슬리는 대통령에게 위급한 상황을 보고한다. 대통령은 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에게 지구 멸망을 경고하고 위기에서 벗어날 비밀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한편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캠핑에 나선 이혼남 커티스는 급히 돌아오라는 전처의 전화에 LA로 향한다.

왜 하필 2012년일까. `2012년 지구종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대표적인 근거는 마야인의 달력이다. 마야인의 달력이 끝나는 날이 2012년 12월21일이라는 거다. 마야의 전승에 따르면 이날 하늘에서 `파괴의 왕'이 내려온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행성 X'설도 있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10번째 행성이 있으며, 이 행성이 지구에 다가오면서 지구의 자전축이 바뀐다는 주장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그림예언', 히브리어 성경에 담긴 `바이블 코드', 주역도 2012년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 `2012'는 이런 종말설에서 제목을 따왔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설도 끌어들이지 않는다. 지구의 지각변동을 짤막하게 언급할 뿐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재난장면으로 돌입한다.

대규모 물량 공세로 몸집을 불린 영화는 입이 쩍 벌어지는 시각적 충격을 준다. 지진으로 대형 쇼핑센터가 둘로 갈라지는 장면은 시작에 불과하다. LA 도심 주차타워에서 자동차가 비처럼 쏟아지고, 고가도로가 주저 앉는다. 고층빌딩은 성냥갑처럼 무너져 내리고, 지진으로 초토화된 LA는 결국 태평양 아래로 가라앉는 비극적 장관이 이어진다.

지진과 화산폭발에서 쓰나미까지, 재난영화의 다양한 무기들이 총망라되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내내 아슬아슬 전력 질주하는 자동차와 비행기는 절멸의 스펙터클을 현란하게 담아내려는 카메라의 다리 역할을 해낸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거대한 예수상이 쓰러지고, 해일에 하늘로 솟은 항공모함이 백악관 위로 떨어진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화산지대로 변하고, 쓰나미는 에베레스트 턱밑까지 차오른다. 끝내 대륙의 형태까지 바뀐다.

그러나 영화의 볼거리들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고스란히 따른다. 입이 딱 벌어지는 건 초반 50분까지다. 재난 장면이 되풀이 되면서 긴장감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쯤 되면 인류 전체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게 되는 데도 심드렁해지게 된다.

`2012'의 문제는 절멸의 재난을 마주하며 고통을 받고 죽음에 이르는 인간들의 절절한 드라마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재난영화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기본을 망각하고 있기에 영화는 짧은 순간 눈을 사로잡고 즐거움을 주지만, 그 때가 지나면 마냥 지루하다.

인간 드라마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두 자녀와 전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가족애가 뜨겁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과학자와 선택받은 자들이라도 구하려는 미국 정부 수뇌부의 갈등도 있다. 세계 정부가 꾸린 인류 생존팀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 세계 60억 인구 중 40만 명뿐. 특히 10억 유로를 낼 수 있는 부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대목은 현실적이지만 분노가 치솟는다.

이처럼 전 인류 중 일부만 선별해 살려야 하는 영화의 설정은 계급 갈등에서 정보 통제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흥미롭게 다루는 실험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자녀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비롯해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는 극중 인물들의 가족 관계는 그들 사이에서 운명이 엇갈리는 순간의 감정적 격랑을 몰고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스스로 제기한 문제조차 끝내 풀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대지의 형제”와 같은 번드르르한 말로 얼버무린다. 볼거리는 있지만 사람의 온기가 빠진 텅 빈 영화, 딱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답다.

지구가 멸망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종말이 오면 어쩌죠?” 티베트의 승려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은 술잔을 채우며 말한다. “이 컵처럼 너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구나. 지혜를 얻으려면 네 컵을 비워야 한다.” 이내 그는 자동차 열쇠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한다. “클러치 살살 밟아.”

종말이 닥치면 살 길은 삼십육계 줄행랑밖에 없다는 충고다./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