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다. 즉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역시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흉악한 범인이라 하더라도 재판을 통해 죄를 묻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얻은 증거가 필요하다.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획득한 정보나 증거는 법률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통일하거나 결정해야 하는 수가 많이 있다. 서로 생각과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
서로 차이는 인정하지만, 결론에 도달하는 합리적 방법과 절차를 사전에 합의하고 이를 따르게 하면 된다. 이것이 회의 원칙이다. 정족수의 원칙, 자유발언의 원칙, 다수결의 원칙, 일사부재의 원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당위이며,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결정된 내용이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이 심대하게 침해당했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속에서 강행 처리되었고, 투표가 이루어지고 나서 재투표하여 일사부재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불법적인 대리투표까지 이루어졌다. 대다수 헌법재판관도 이를 인정하여 신문법과 방송법의 가결 절차상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여 위법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미디어 관련법이 효력이 없다고 결정하는 것이 법률적 판단의 기본이다. 그런데 표결과정상에 위법이 있었지만, 법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축구경기에서 오프사이드라는 반칙이 있었지만, 골은 유효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차라리 절차상에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법안이 유효하다고 했다면 논리적 일관성이라도 지킨다는 면에서 그래도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과정에 하자가 있었으나 통과된 법안이 유효하다는 것은 상식을 뒤집는 것이며 자기모순적 결정이다. 그것은 논리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것이며, 매우 비법률적인 판단이다. 헌법재판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양다리 걸치는 대단히 비겁한 정치적 처신이다.
정치적 또는 법률적 분쟁을 헌법 정신에 따라 명확히 판단하고 법치주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헌법재판소에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다. 해괴한 논리로 불법을 용인하는 초법적 또는 정치적 결정을 그만두어야 한다. 지난주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가 헌재 결정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응답한 사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헌법이 정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키지는 못할망정 삼류 코미디로 상식과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짓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