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
훈민정음에 나타나 있듯이 `일반 서민들이 쉽게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여기서 `일반 서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은 날마다 하는 일상적 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적인 영역에서 의사표현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훈민정음에 있는 정인지의 꼬리글에도 나타나듯이 `아랫사람의 뜻이 위에 사무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에게 억울한 일이 많아 정치가 명랑하지 못하니 어진 정치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한글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글이 창제됐던 1443년 세종 25년, 당시 신석조, 김문 등 집현전 원로학자들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반대의 주장을 편다. 당시 지식인들은 모두 한문을 가지고 불편없이 표현생활을 했고, 실제로 모든 지식이 한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글을 창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대의 관행인 한자중심에 어긋나는 일이고, 아마도 불필요하게 문자생활에 혼란을 일으켜 `국가경쟁력을 하락'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자기 표현을 공식문자로 남길 수 있는 한글이 쓰이게 되면 기득권층인 양반 계층의 이익에는 불편하게 될 것이라는 염려에서 였다. 이렇게 한글을 창제하는 것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집현전 학자들 마저 사실은 한글 창제에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세종은 당시 반대 상소를 올린 학자들을 전원 하옥시키면서까지 한글 만드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한글을 창제한다는 사실이 신하들에게 알려졌다면 한글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세종은 10여 년간 몰래 한글 창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당대 학계를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한글처럼, 세종의 이름을 딴 세종시의 운명도 현재 바람 앞의 등불 꼴이 되었다. 한글창제에 반대하던 논리와 똑같은 논리로 세종시를 반대하고 있다. 한자를 잘쓰고 있는데 왜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냐는 것처럼, 서울을 관습적 수도로 해서 수백년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는데 왜 옮기느냐고 한다.
온통 세상의 지식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것처럼, 현재 서울의 경쟁력을 높여야지 수도를 분산시켜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한다. 왜 어리석은 백성들이 글쓰게 만들어서 나라를 혼란시키게 하느냐는 것처럼, 통일되면 한반도 중심에 수도가 있어야 하는 데 수도가 남쪽으로 치우치면 되겠냐고 한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한글 창제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세종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단호한 리더십이 세종시의 앞날에도 간절히 필요하다. 세종시는 충청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균형발전을 바라는 비수도권 지역 주민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높은 주택가격과 낮은 삶의 질에서 허덕이는 수도권 서민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한글이 창제되고 300년이 지나서야 한글의 시대가 되었던 것처럼, 세종시는 당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백년 후세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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