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길거리에 뒹구는 낙엽들을 보며 또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찬연한 모습으로 떨어지는 잎들을 보며 자연의 순환 원리에 새삼 마음까지 겸허해진다. 예전엔 보이는 가을이 아름답기만 했는데, 이젠 가을이 내주어야하는 겸양의 자리까지 생각하는 깊이가 생겼다. 겉만 보고는 다 알 수 없는 삶의 깊이를 이제야 조금은 느끼는 듯하다.
▲ 박옥진 다문화가족사랑회장. 대전목련로타리회장 |
처음 결혼 이주 여성들을 만났을 때, 필자의 마음은 오죽했으면 낯선 이 먼 땅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맑고 순수한 눈망울이 배움의 열망을 담아 한국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도 진정한 한국인으로 한 가족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여성으로 자라나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며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땅 어느 곳에선가 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참 소중하면서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그것은 누구나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일들이 다문화 가정을 향해 있으면 무게와 부피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얼마전 다문화 이주 여성중 하나가 상담을 요청해왔다.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걱정이라는 것이다. 피를 토해내는데 병원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돌 지난 아이가 있는데, 남편이 걱정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스물둘 밖에 안된 아기 엄마의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다문화 이주 여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사회적 책임도 늘어만 간다. 이주 여성들을 비롯한 다문화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참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의 문제와 여성으로서의 문제, 가족 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까지 얽혀 참으로 복잡다단하게 나타난다.
한 사람이 자라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평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가족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도 그 안에 내재된 무수한 갈등과 화해의 반복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일 역시 사회적 관습과 갈등속에 해결할 문제들이 많으며, 자녀들과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있어서도 문화적 차이와 대화의 부족으로 크게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불균형에 시달리는 교육의 문제 또한 매우 큰 실정이다. 다문화 가정의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데다 태어나 자란 나라가 다르다는 문화적 차이와 세대 차이까지 안고 있어 사회적 관심이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일이란 매우 포괄적인 의미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며 겪게 되는 수많은 갈등과 화합의 의미이며, 자식을 사랑하고 시부모와 문화적 차이로 갈등하며 남편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과도 동일 선상에 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다문화란 말로 이주 여성들을 다르게 보고 이주 여성으로 분류하면서 보편적 갈등의 요소들을 다르게 차별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다문화 가정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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