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철 대전예고 이사장 |
또한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몸의 “형편에 따라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원칙의 최고의 쓸모”라는 말을 인용하였고, 여기에 박근혜 의원을 향해 `한숨', `완고한 입장'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원칙을 단순한 관념적 이데아라고 표현하고 세종시의 존재가 국가에 재앙을 가져다 줄 것과 약속을 깨는 것을 용기라고 주장했다.
세종시에 대한 개인의 견해에 대한 부분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국가적 어젠다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원칙과 신뢰라는 절대적 가치가 개인의 입맛에 따라 좌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히 지적하고 싶다. 우선, 세종시에 정부부처가 옮겨 온다고 해서 국가적 재앙사태가 온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제시된 적도 없다. 그저 막연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둘째, 아버지 부시와 브라질의 카르도주를 예로 들어 그들이 원칙을 바꿨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상위개념인 전략이 아니라 하위개념인 전술을 바꾸었을 뿐이다. 더욱이 역사적 평가 가치도 없는 외국대통령들의 예보다는 원칙을 지켜 위대한 지도자로서 추앙받고 있는 링컨, 처칠, 간디 같은 분들의 예를 들었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 분들 모두 정당치 않은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원칙을 지켜 인류역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들이다. `정직은 가장 확실한 자본'이라는 에머슨의 말이나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공자의 가르침 역시 원칙과 신의라는 것에 대한 좋은 격언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의 말은 곧 생명이다. 거짓을 이야기 하면 바로 은퇴를 해야하는 것이 민주국가에서의 지도자의 말인 것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대통령은 닉슨이고, 닉슨을 자유세계의 지도자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워터게이트 건물의 불법도청사건 자체가 아닌 그의 거짓말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대통령부터 거짓을 말하고, 과연 이 나라의 윤리와 정의는 어디에 있으며, 누가 감히 국민에게 정직을 말하고 법을 지키라고 할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해 세종시에 대한 의견은 개인의 견해다. 여기에 대한 김영희 대기자의 사견에 논쟁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원칙을 버리라는 말에는 백번을 양보해도 동의할 수 없다. 역사에는 때로는 정의가 거짓에 패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 정치 지도자는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닌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신뢰는 상인에게도 생명과 같은 것인데 하물며 정치 지도자야.
선진화와 국격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와있다. 선진화와 국격은 물건 몇 개 더 팔고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중동의 석유재벌 국가들이 돈이 없어 선진국 대접을 못 받은 것은 아니다. 선진 사회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신용사회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선진국에서 거짓말은 곧 사회적 매장을 의미한다. 하긴, 자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731부대를 항일 독립군단체라고 말하는 총리를 모시고 있는 국가가 선진화와 국격을 논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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