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의 '능글맞은' 전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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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능글맞은' 전쟁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프 왈츠, 멜라니 로랑.

  • 승인 2009-12-29 14:08
  • 신문게재 2009-11-06 11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알도 레인 중위가 이끄는 미군 특수부대 ‘개떼들’은 나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은 나치의 수뇌부가 극장에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공격작전에 나선다. 극장주인 쇼사나 역시 나치 수뇌부를 노린다. 나치에게 온 가족을 잃은 그녀는 이 기회에 복수를 하고자 한다.

 
 ◆저수지의 개들
 먼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이로운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보자. 이 영화엔 타란티노 영화의 미래가 곳곳에 담겨 있다.

 영화 초반. 한탕을 위해 한 창고에 모인 여섯 명의 프로 갱. 이들은 만나기 무섭게 말다툼을 벌인다. 서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정한 별명-화이트 오렌지 핑크 등등-을 놓고, “내가 왜 하필 핑크냐”하고 불만을 쏟아낸다.

 시답잖은 이유로 벌이는 ‘농담 따먹기’ 같지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속속들이 드러낸다. 대사만으로 간단히 캐릭터를 드러내는 솜씨. 대사빨 만큼은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임을 타란티노는 이때 이미 입증했다.

 영화 중반. 블론드는 붙잡은 경찰을 오랜 시간 고문하고는 묻는다. “너도 나만큼 즐거웠어?”
 타란티노 영화는 항상 관객들에게 묻는다. “나는 즐거웠는데, 즐거우셨수?”

 ◆펄프 픽션 그리고 킬 빌
 ‘펄프픽션’은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이 이야기의 결말이 저 이야기의 시작이 되고, 저 이야기의 단서가 그 이야기의 반전이 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경탄이 절로 나온다. 구성력을 갖춘 탁월한 이야기 꾼, 다른 차원의 감독의 탄생을 확인하는 거다.

 타란티노 감독은 비디오대여점 점원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킬 빌’의 그런 그의 전력을 반영한다. 대만과 홍콩영화,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몽땅 끌어다 복제하고 비튼다. 복제뿐이 아니다. 복제한 걸 또 복제하고, 또 다시 복제한다. 오리지널은 도무지 관심 없다는 투의 방식은 재미만 있다면 어떤 경계도 허물어 버리는 게 타란티노 식임을 드러낸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타란티노 식을 집대성한 특급오락물이다.

 영화는 두 가지 스토리를 기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나치의 ‘유태인 사냥꾼’ 한스 대령에 의해 가족들이 몰살당한 쇼샤나가 펼치는 복수극이다. 하나는 미군 특수부대 ‘개떼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알도 레인 중위의 활약상이다. 두 이야기는 결말에서 하나로 묶인다. ‘펄프픽션’ 식이다.

 ‘킬 빌’처럼 이번에도 수많은 영화를 인용한다. 이번엔 서부극이다. 브래드 피트는 클라크 게이블의 표정으로 찰스 브론슨처럼 행동한다.

 타란티노의 뛰어난 대사 작법은 이 영화에서 절정의 감각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대사들은 입으로 쏘는 총격전 같다. 극 초반, 한스 대령과 유태인을 숨겨준 프랑스 농부와의 대화 장면은 압권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지만 객석에는 살얼음을 밟는 듯 긴장감이 감돈다. 대사의 톤과 표현의 뉘앙스,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절묘하게 어울린 결과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박진감을 안겨주는 대사빨. 타란티노답다.

 재미만 있다면 역사적 사실까지도 비틀어 버린다. 영화의 배경은 ‘옛날 옛적 나치 치하의 프랑스’지만 ‘역사적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영화 속의 나치는 그냥 두들겨 패고픈 악당으로 불려왔을 뿐이다.

 히틀러가 자신의 벙커에서 자살한 게 사실이지만, 타란티노는 극장에서 최후를 맞는 건 내 식이라고 고집을 피운다. 총알을 아예 퍼붓는 시원한 결말이 지나고 나면 타란티노가 능글맞게 씩 웃으며 이렇게 묻는 듯하다.

 “재미있으셨수? 나는 재미있었는데.”
 아마 대다수 관객들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
 “아주 재미있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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