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다른 한편 3분은 달리기를 잘하는 선수가 1500미터쯤 갈 수 있는 시간이다. 3분이면 화랑담배 1개비를 꽁초까지 피우고 종이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고도 어기적거릴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1분간 몸에 물을 뿌리고, 1분간 비누칠하고, 1분간 비누거품을 닦아 몸을 말렸다.
은행털이 강도들이 금고 안의 돈을 강탈해 사라지는데 3분은 퍽 긴 시간이다. 3분이면 스토리가 담긴 15초짜리 텔레비전 광고 12편을 볼 수 있다. 유로 2008축구대회 16강전에서 터키는 종료 3분을 남기고 2골을 성공시켜 체코를 2대1로 물리쳤다. 한국 프로축구에선 2005년 울산 현대가 후반 막판 3분 만에 3골을 넣고 300승 고지를 달성하기도 했다. 3분은 무엇인가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에게도 3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009년 7월 22일, 미디어관련법을 처리하고 있던 국회본회의장. 신문법과 방송법 수정안에 대한 제안자의 구두설명은 물론 제안취지를 담은 서면자료의 배포도 없었다. 안건에 대한 질의와 토론 역시 이뤄진 바 없이 의결 절차가 진행되었다.
오후 3시 55분 디지털본회의장 ‘회의진행시스템’에 방송법 수정안이 입력되었다. 3분 후인 3시 58분, 방송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선포되었다. 국회의원들이 단말기로 방송법 수정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질의나 토론을 신청할 수 있었던 시간은 3분이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3분은 충분한 시간일까, 찰나의 시간일까?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비범한 역량을 평범한 사람들이 논하는 것은 무리일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물어보자. 헌재 재판관들의 넷은 3분의 시간은 수정법안에 대해 질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로 볼 수 없다, 혹은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9명의 재판관 중 5명은 3분을 질의나 토론을 신청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제안자의 구두 설명을 듣지 않고, 제안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3분 만에 컴퓨터 단말기에 입력된 수정법안의 내용과 제안자의 말하지 않은 취지까지 가려서 헤아리는 역량을 국회의원들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 다수의 이러한 판단은 국회의원의 자질에 대한 기존 인식이 편견일 수 있다는 점을 깨우친다.
왜냐하면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의 속전속결할 수 있는 역량을 신뢰하지 않고 대신 법안 상정과 의결에 대해 차근차근, 조목조목 설명하고 따져보며, 질의하고 답변하는 절차를 규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초고속 냉수 목욕하듯 3분 만에 법안을 벼락치기한 국회의원들의 능력이 탁월한 것인가, 아니면, 3분이면 충분하다는 헌재 재판관들의 기술적 상상력과 법적 판단력이 출중한 것인가?
참, 신문법 수정안은 3시 49분 27초에 회의진행시스템에 입력되고 3시 50분에 표결이 시작됐다. 법안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나서 질문을 할 것인지, 혹은 토론을 신청할 것인지 숙고해볼 수 있는 ‘33초간의 여유’가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졌었다. 이쯤 되면 날치기가 아니라 번개치기다. 법안 처리의 위법을 치유할 책임은 국회에 있다. 국회와 헌법과 역사가 여야정당에 준엄하게 요구하는 당장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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