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세종시 문제와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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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언복]세종시 문제와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

[목요세평]표언복 목원대 교수

  • 승인 2009-11-04 19:32
  • 신문게재 2009-11-05 20면
  • 표언복 목원대 교수표언복 목원대 교수
 정운찬 총리 취임을 전후해 불거진 ‘세종시’ 논쟁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를 기세다. 처음부터 나라를 위하는 마음보다는 표 얻어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심이 더 앞섰던 사람들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고, 수도를 통째로 옮기고자 한 엄청난 ‘역사’였던 만큼 논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웬만큼 짐작되는 일이기도 했다.

역시 국익이나 소신같은 것보다는 ‘표’를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려 온 세종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하고 묻어 둘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논의의 마당에 끌어내어질 모양이다. 늦어도 아주 많이 늦었고, 그 사이 소모된 국력이 엄청나지만 이제라도 정말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을 일이다. 그러나 낌새는 벌써 그런 기대도 무망해 보인다.

오로지 유권자의 표만을 하늘로 삼는 사람들이 논의의 선두에 서서 목청을 높이고 있으니 그렇다. 변명도 해명도 없이 목전의 이해(利害)를 따라 말 바꾸고 낯 숨기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정치판 사람들에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없는 일 아닌가. 원안의 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관철을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원안 더하기 알파를 주장하는 사람 모두가 정직하지 못하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그들 모두가 표에 홀려 물불 가리지 않고 공약을 남발했거나, ‘그건 아닌데...’하면서도 마지못해 엉거주춤 우단(右袒)을 선택했거나,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신의를 앞세우는 사람조차 마음은 앞질러 국익도 콩밭도 아닌 표밭 한 가운데 서 있는 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 아닌가.

 나만 빼고 다 그르다는 듯, 이 사람 욕하고 저 사람 비난하며 모두가 진흙탕 속 개싸움 벌이듯 하는 오늘의 정치현실을 보고 용기 있게 혀를 차거나 머리를 내두를 만한 사람은 또 누군가? 개펄에선 망둥이가 뛰고 큰 바다에선 고래가 노니는 법. 저들 노니는 곳을 ‘정치판’이라 냉소하며 홀로 백로인 듯 자신과 경계 짓고자 하지만 정치판이란 게 무엇인가. 표를 찾아 뜀뛰기 하며 표 있는 곳에서 춤추는 사람들 세계가 바로 정치판 아닌가. 그 표 있는 곳이 바로 우리네 일상 속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오늘의 이 한심스런 정치현실을 두고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망둥이가 있어 개펄이 생긴 게 아니라 개펄이 있어 망둥이가 모여든 이치를 생각하면 금방 알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표밭을 개펄 삼아 제멋대로 농락하고 마음대로 능멸하는 저들을 탓할 게 아니라 소매 속에 손 넣고 스스로 개펄 되기를 방관해 온 우리 먼저 자책함이 이치에 맞는 일이다. 너 나 없이 지역주의에 감염되어 이 사람에게 휘둘리고 저 사람에게 이용당해 온 지난 역사를 부끄럽게 자책해야 옳은 일이다. 지역주의가 망국의 근원임을 모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중심잡고 지역주의의 그늘에 숨어 일신의 영예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냄새나는 욕망을 좌절시켰어야 옳다. 그리고 보다 더 큰 틀 안에서 지역의 발전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했어야 바른 일이었다.

 오는 9일은 도산 안창호 탄신 13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찍이『안도산전서』를 펴 낸 주요한은 안창호 일생의 정치철학을 ‘대공주의(大公主義)’로 요약해 보였다.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대공주의는 민족의 복지, 공공의 이익, 국가의 요구 앞에 개인이나 소아, 사익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권이 기울자 망명길에 올라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지독스런 분파주의에 시달렸다.

그의 인격과 사상에 이끌린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자 터무니없는 오해와 악평이 그를 괴롭혔다. 지방열과 야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서북 출신인 그에겐 특히 기호파의 견제가 극심했다. 그는 ‘백의종군’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 대리며 내무총장직까지 미련없이 내어놓고 말단 노동국 총판의 명의로도 충정에 소홀함이 없었다. ‘대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기 희생의 정신이었다. 분파가 분파를 낳고 파당이 파당을 짓는 형세 속에서 이들을 모두 아울러 국권회복의 대의를 이루고자 한 그의 노력은 이처럼 처절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을 겪고 있는 시점에 도산을 그리는 뜻은 그의 대공주의가 문제해결의 열쇠라고 믿는 때문이다. 크든 작든 인사(人事)만 있었다 하면 출신지부터 따지는 식의 지독한 소아병적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때를 만났다는 듯이 목울대를 추켜 올리며 ‘충청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천박한 지역주의 놀음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충청인의 충청인다움은 사태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에 있고, 작은 나보다 항상 큰 나를 앞세우는 ‘대공사상’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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