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이 책을 읽은 후로는 굳이 옛터가 아니더라도 이 땅 어딜가나 이러한 질문들이 던져졌다.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이리 즐거울 수 있다니 누군가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생긴 것만 같다.
이 책은 그렇게 나와 옛 사람들을 이어주었다.
책만보는바보는 조선 정조(正祖,1752~1800)때의 실학자였던 이덕무(李德懋,1741~1793)와 그의 벗들 이야기다. 학창시절 그 실학파와 그 사상에 대한 것인가 벌써부터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분이 있다면 염려는 저만치 놓고 붙들어 매도 좋다. 차라리 이 책을 그 시절 읽을 수 있었더라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으로부터 역사에 다가갈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이덕무는 서자 신분이다. 이렇게 못을 박고 시작하는 것은 그와 그의 벗들이 가졌던 신분의 굴레가 어떤 것이었겠는가를 이 책을 통해 최소한이라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반에도 상인에도 어디에도 낄 데가 없이 책만 좋아했던 그는 새보금자리에서 처남인 백동수, 일곱 살 아래인 유득공, 아홉 살 아래인 박제가, 열세 살 아래 이서구 그리고 스승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간다.
이덕무는 겨울에 제대로 불을 때지 못해 세살난 딸아이와 어머니까지 잃을 정도로 가난했다. 한번은 입김이 공중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곧장 성에가 되어 이불에 맺힐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중국 후한 시대의 역사가 반고가 쓴 한서(漢書 한질을 이불위에 죽 늘어놓고 그 속에 누워 잤다고 한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한 것이라지만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책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온기가 없는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오래전부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길을 느낀다든가, 제 몸을 벌떡 일으켜서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본문중 27쪽)
또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가 굶어 일곱권이나 되는 맹자(孟子) 한질을 팔아 양식을 얻었다고 한다. 자식들 굶는데 그까짓 책 한질 파는 것이 뭐그리 대수인가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생각이지만 그 당시 가난한 선비로서 이 일은 너무나 이덕무를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벗인 유득공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자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 먹은 줄 아는가? 글쎄, 맹자께서 양식을 잔뜩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내가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 주어 고마웠던 모양일세.”
“아.”
가느다란 한숨 소리와 함께 유득공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유득공은 얼른 서글픈 표정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허물없을 만큼 그의 글을 꽤 읽었지요.” 그리고는 책장에서 좌씨춘추(佐氏春秋)를 뽑아, 아이를 시켜 술을 사오게 하였다.(본문중 33쪽)
이러한 벗이 있기에 이덕무의 가난한 젊은 날은 그리 서럽거나 외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에게 스승 또한 제자들에게 번뜩이는 영감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담헌 홍대용을 만나기전까지 한번도 진지하게 하늘과 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이들은 둥근 `지구'에 대해 듣고 그때까지 세상의 중심이던 중국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기회를 맞이한다. 아울러 연암 박지원을 통해 옛날이 아닌 지금, 중국이 아닌 조선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훗날 정조의 부름을 받고 관직에 나아간 이후 이야기들과 유득공의 발해고가 어찌 나오게 되었는지,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이덕무와 그 벗들이 가졌던 슬픔과 생각들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해준 안소영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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