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건이 벌어진 방안에서는 용의자를 추려낼 만한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자매의 이불에서 혈흔이 묻은 운동화 족적만이 발견됐을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사건 현장을 훤히 내려다보이는 옆집 옥상에 올라간 허 경사는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인의 미세한 흔적을 발견한다.
털끝만 한 단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과학수사 요원의 세밀한 현장 감식이 없었다면 자칫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 말고도 굵직한 사건 이면에 항상 과학수사의 땀방울이 있었다. 지난 2006년 1월, 10여 년에 걸쳐 부녀자의 성을 유린해 온 `발바리'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도 과학수사였다. 당시 동부경찰서 형사대는 보유하고 있었던 발바리 DNA와 수십만 건의 표본을 대조하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얼굴 없는 발바리를 쫓았다.
그러기를 1년여, 결국 대덕구 한 주택에서 나온 칫솔, 담배꽁초 등에서 같은 DNA가 검출됐다.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발바리 신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신원이 밝혀지면 신병확보는 시간문제. 한 달여 간의 소재 추적과 일주일만의 공개수사 과정을 거치며 발바리 이 모(당시 45세)씨의 도피행각은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7년 4월 신탄진 다방 여종업원 살해 사건 용의자도 자신의 점퍼에 남아 있었던 미세한 흔적을 집요하게 파고든 과학수사의 덫에 걸려들었다. 용의자 점퍼에서 피해자 혈흔과 용의자 DNA가 확보되면서 경찰은 용의자를 신탄진 인근 집성촌 거주자로 압축했고 사건 발생 72일 만에 검거에 성공했다.
이밖에 2005년 8월 아내와 세 아들을 살해하고 화재사건으로 위장했던 문화동 일가족 화재와 2007년 11월 청주 굴착기 기사의 휴대폰 폭발 조작 사건 해결도 과학수사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김태규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프랑스 과학수사 선구자 로카드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과학수사를 표현했다”며 “증거를 찾아내고 수집해 수사에 활용하는 능력에 따라 경찰 수사의 성패가 좌우되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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