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5남매 키우랴 하룻밤 2필씩 짜기도

가난에 5남매 키우랴 하룻밤 2필씩 짜기도

<장인의 혼을 찾아서> 4.도1호 한산세모시짜기[나상덕씨]

  • 승인 2009-10-29 14:21
  • 신문게재 2009-10-30 12면
  • 임연희 기자임연희 기자
“어머니는/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아들들의 가슴에/심어 주신다.”

정한모의 시 어머니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눈물-진주-광택의 씨-태양'에 비유해 어려운 생활상을 딛고 고난(눈물)을 행복(진주, 태양)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한산모시의 역사와 모시 제조과정을 전시한 한산모시전수관에 가면 이 시와 함께 베틀 위에 앉아 모시를 짜는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워낙 고된 노동이라 어머니들은 절대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려서 보고 배운 게 모시 짜는 일이라 어깨너머로 곁눈질하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베틀에 앉다보니 평생을 베틀 위에서 살게 됐구먼.”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명예보유자 문정옥(81·사진)씨는 열여섯에 처음 모시 짜는 일을 배웠고 충남도무형문화재 제1호 나상덕(77·사진)씨는 열여덟 살부터 베틀에 앉았다.

모시 일을 하던 할머니 곁에서 모시를 째고 삼는 것을 배우며 자란 나 씨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모시 짜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모한테서 본격적으로 세모시를 배웠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해가 저무는 것도 모르고 모시를 짜다가 시부모님께 야단도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그러나 이런 재미도 잠깐, 물려받은 땅도 밭도 없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어린 5남매를 키우기 위해서는 밤낮 가리지 않고 허리가 휘도록 모시를 짜서 장날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젊은 시절 나 씨는 이틀 반나절이면 모시 한 필(폭 30.3㎝, 길이 21.6m)을 짰는데 상대적으로 좋은 값을 받는 세모시를 배운데다 인근에 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나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모시 한필이면 쌀 서너 말을 살 수 있던 때라 고단할 줄도 모르고 밤을 꼬박 새워 하룻밤 2필씩을 짜낼 만큼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고 회고한 한산모시짜기 명예보유자 문 씨는 “모시를 못 짜면 며느리를 잘못 들였다 할 정도로 모시 잘 짜는 며느리들이 인기 있을 때여서 시집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 이렇게 모시를 짜다보니 자연 생계를 도맡게 됐다”고 말했다.

모시의 고장인 서천군 한산면에서 나고 자란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들은 타 지역 외출은 고사하고 출산과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베틀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여름엔 습기가 많아 모시가 부들부들하고 끊어지지 않아 좋은데 습기가 적은 봄·가을은 일하기는 편하지만 실이 자주 끊어져 고생하다보니 아예 반지하로 토굴을 만들어 놓고 작업을 했다”는 나 씨는 고온다습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보니 지금은 어깨와 허리, 다리 통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이렇듯 힘든 모시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나 씨는 자신이 짠 결 고운 세모시로 만든 한복을 내보이며 “중국산 모시로 만든 옷은 2년이 채 못가지만 한산모시로 해 입은 옷은 10년이 지나도 색과 결이 고와 옷맵시가 고스란히 살아난다”고 자랑했다. 너무나 힘들어 누구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던 모시 일은 지금도 딸과 며느리, 손녀로 이어지고 있다.

맏딸이자 전수자인 박미옥(50)씨와 스승과 제자로, 때로는 친구로 오순도순 모시 일을 하고 있는 나 씨는 “나도 어머니 몰래 할머니 곁에서 모시 일을 배웠는데 곁에 있던 맏딸이 어려서부터 일을 거들어주더니 지금은 초등학생 손녀딸까지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베틀 위에 올라 앉아 모시를 짜더라”며 “한산세모시짜기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게 남은 일”이라며 웃었다. /임연희·동영상=금상진 기자

<한산모시제작과정>
 모시풀 재배·수확-태모시 만들기-모시 째기-모시 삼기-모시 날기-바디 끼우기-모시 매기-모시 짜기
 
 1. 모시풀 재배 수확 : 모시풀은 숙근성 초본 다년생 작물로 한번 심으면 10년 정도 수확 할 수 있다. 모시풀 수확기는 대략 6월 하순에서 7월 초순, 8월 하순에 이수, 10월 상하순에 삼수로 연간 세 차례한다.

 2. 태모시 만들기 : 모시풀의 속껍질을 햇볕에 말리고 물에 적시기를 네다섯 번 번갈아 하면 모시의 최초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인 태모시가 생산된다.

 3. 모시째기 : 태모시를 이로 쪼개서 모시섬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과정으로 상저, 중저, 막저로 구분되는 모시의 품질이 나온다.

 4. 모시삼기 : 모시섬유 한뭉치를 ‘쩐지’라는 버팀목에 걸어놓고 한 올씩 빼어 양쪽 끝을 무릎에 맞이어 손바닥으로 비벼 연결시켜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침으로써 모시굿이 완성된다.

 5. 모시날기 : 10개의 모시굿에서 ‘젖을대’의 구멍으로 실 끝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한 후 날틀에 걸어 한필의 길이에 맞추어서 날실의 길이로 날고 새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6. 바디 끼우기 : 날실이 일정한 새와 폭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며 이 작업과 병행하는 것이 꾸리감기이다. 꾸리감기는 씨줄을 만드는 과정으로 모시 짜기를 할 때 씨실 꾸리를 북에 담아 사용한다.

 7. 모시매기 : 모시매기의 ‘매다’는 ‘다했다’는 완성의 의미가 있다. 모시매기는 바디에 끼워진 모시를 한쪽은 도투마리에 매고 다른 끝은 ‘끌게(도투마리를 감으면 끌려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매달아 고정시킨 후 콩가루와 소금을 물에 풀어 만든 풋닛가루를 뱃솔에 묻혀 날실에 골고루 먹인다. 그리고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왕겻불로 말리면서 도투마리에 감는 과정이다.

 8. 모시짜기 : 모시매기 과정을 거쳐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 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를 끼운 날실을 빼어 각각의 잉아에 번갈아 끼운다. 베틀의 ‘쇠꼬리채’를 발로 밟아 잡아당기며 날실을 벌리고 씨실이 담긴 북을 좌우로 움직이며 엮어 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정림동 아파트 뺑소니…결국 음주운전 혐의 빠져
  2.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지면 소장 취임…"통합방위 고도화"
  3.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 체포…피해 귀금속 모두 회수 (종합)
  4. 대전 출신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사표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트리 불빛처럼 사회 그늘진 곳 밝힐 것"
  1. 대전성모병원, 개원의를 위한 심장내과 연수강좌 개최
  2.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지어지선을 향해 날마다 새롭게
  3. 대전세종중기청, 경험형 스마트마켓 지원사업 현판식
  4.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 대전·세종 낙폭 확대
  5.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2000만 원 귀금속 훔쳐 도주

헤드라인 뉴스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전면 시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책 방향이 대폭 변경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열린 13차 전체회의에서 AIDT 도입과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교과서의 정의에 대한 부분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 '교과서'인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학교가 의무..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대전시가 지역 마스코트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꿈돌이 라면' 제작을 추진한다. 28일 시에 따르면 이날 대전관광공사·(주)아이씨푸드와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 및 공동브랜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대전 꿈씨 캐릭터 굿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라면제품 상품화'를 위해 이장우 대전시장과 윤성국 대전관광공사 사장, 박균익 ㈜아이씨푸드 대표가 참석했다. 이에 대전 대표 캐릭터인 꿈씨 패밀리를 활용한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공동 브랜딩, 판매, 홍보, 지역 상생 등 상호 유기..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가 30년 묵은 숙제인 안면도 관광지 조성 사업 성공 추진을 위해 도의회, 태안군, 충남개발공사, 하나증권, 온더웨스트, 안면도 주민 등과 손을 맞잡았다. 김태흠 지사는 28일 도청 상황실에서 홍성현 도의회 의장, 가세로 태안군수, 김병근 충남개발공사 사장, 서정훈 온더웨스트 대표이사,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김금하 안면도관광개발추진협의회 위원장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나증권 지주사인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회장도 참석,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면도 관광지 3·4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