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도 꿈도... 모두 물밑에 잠겨버린겨”

“삶의 터전도 꿈도... 모두 물밑에 잠겨버린겨”

[금강리포트]비단길 천리에서 상생을 찾다 15.수몰민, 그 애환의 노래

  • 승인 2009-10-29 14:17
  • 신문게재 2009-10-30 13면
  • 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충북 청원군 문의면 청남대로 가는 길목을 지나 회남 쪽으로 향하다보면 대청호반에 자리한 오지마을을 만나게 된다.

 인적을 찾기 힘든 굽이굽이 두멧길을 따라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로 향하는 길. 몇 채의 가옥이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 마을 앞 고개에 서 있는 비석 하나가 먼저 발길을 잡아챈다. 

 머릿돌에는 ‘사향탑(思鄕塔)’이란 글씨가 큼지막히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써 내려진 글귀는 이곳 마을에 얽힌 애잔한 사연을 전한다.

 ‘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 아! 이곳에 잊지 못할 동심이 있었으니 꿈엔들 어이 잊으리오. 국가 백년대계의 사업으로 대청댐이 완공되니 때는 1979년, 기름진 옥토를 경작했으며 동쪽으로는 뒷골, 남쪽으로는 독골, 서쪽으로는 우리가 가장 정이 깊었던 금강물과 나룻터 하얀 백사장이 있었네.

웃여울 아랫여울에서 철렵하고 미역 감던 우리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 나라를 위해 정다웠던 이웃들은 마음속에 묻고 뿔뿔이 흩어진지 어언 16년!/ 아!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겠지만 우리 수몰민들은 영원히 찾지 못할 수중이어라.’

 투박한 문구에서 가슴 절절함이 배어 나오는 이 비석은 대청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으면서 고향을 등져야했던 출향민들이 후일 고향땅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운 것이다.

▲ 계족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 모습.
▲ 계족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 모습.

200여호 넘던 마을이 졸지에 물 속으로

대청호 수몰 마을인 이곳 후곡리는 오지임에도 한때 가구수가 200여호에 이르는 꽤나 큰 마을이었다. 벌말, 뒷골, 진사골 등으로 불리던 마을들이 있었고, 특히 강을 끼고 있던 벌말(평촌)에는 100여가구 7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살았다. 벌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가을이면 너른 옥토(沃土) 위로 누런 곡식이 익어가고,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사람 사는 냄새가 넘쳐나던 평온한 마을이었다.

마을에 사는 김홍주(70) 할아버지는 “한때 벌말에는 예비군만 50명이 넘었던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대청댐 건설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후곡리 전체를 합쳐 10여 가구 밖에 남지 않았다. 산 귀퉁이에 남은 전답이라도 부쳐먹고 살겠다고 물에 잠긴 마을 위로 집을 옮겨짓고, 일부 주민들이 어렵게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전부 노인들 뿐이라 마을에는 빈집만 하나 둘 늘어간다.

마을 입구에 을씨년스럽게 자리한 폐가를 바라보던 김 할아버지는 “노부부만 살았는데 얼마전 남편은 죽고 부인은 자식들을 따라 도회지로 떠났다”고 전했다.

김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늘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간다.

“벌써 30년이 다 된 얘기네. 순식간에 집도 절도 다 잃었으니 다들 떠날 수 밖에. 나이 든 양반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젊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 하나 둘 발길이 뜸해지니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이대로 마을 자체가 역사 속에 묻히지 않겠어. 흔적 하나 남아있지 않아도 우리 집이 어디쯤인지 애들 다니던 학교가 어디쯤인지 눈에 선한데 말이여.”

2만6000여명 뿔뿔이 흩어져

1980년 금강의 물줄기를 막아 건설된 대청댐은 충청인에게 생활에 꼭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많은 수몰민들에게서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대청댐 건설로 형성된 대청호는 동쪽으로 충북 보은군 회남면, 서쪽과 남서쪽으로 각각 대전시 대덕구와 동구, 북동쪽 및 북서쪽으로 충북 청원군 문의면 및 현도면과 맞닿아 있다.

▲ 충북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마을 어귀에 세워진 사향탑.
▲ 충북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마을 어귀에 세워진 사향탑.
댐 건설 당시 이 일대 해발 80m 이하의 지역이 대부분 물 속에 잠겼고, 수몰면적만도 여의도의 85배 정도에 달했다. 청원과 보은·옥천·대덕 등 충남·북 4개 시군에 걸쳐 2개읍 11개면 86개 마을이 물에 잠겼고, 4000여 세대 2만 6000여 명의 수몰민이 졸지에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대청호에는 그득한 물 뿐 아니라 그 수많은 수몰민의 눈물과 애환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이들 수몰지역 가운데서도 수몰면적으로 치자면 옥천군은 최대 피해지다. 군 전체의 60%가 넘는 면적이 물에 잠겼고, 그 중에서도 군북면 일대는 12개 마을이 수몰지역에 포함됐다.

지금은 10여 호 정도만 남아 있는 군북면 막지리도 수몰 전에는 100여 호가 넘게 모여 살던 강변마을이었다. 호수 건너편 소정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거나 굽이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막지리.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수몰과 함께 대전과 평택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은 1년에 한번 정도 옛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실향의 시름을 달래고,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막지리에 살다 수몰 이후 대전으로 떠났던 손용자(69)씨는 고향을 잊지 못해 되돌아 온 경우다. 손씨는 현재 물속에 갇힌 옛 고향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소정리에 살고 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고향땅을 내주고 떠났지만, 못 배우고 평생 땅만 파던 사람들이 도시에 가서 할일이 얼마나 있겠소. 먹고 살기도 힘들고, 고향 땅 근처에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자고 바로 돌아왔지. 고향 떠난 사람들 처지나 심정이 다 비슷하지. 물론 고향에 와서도 먹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나라에서 땅은 다 뺏어 갔어도 변변한 보상이나 지원은 없으니….”

수몰민 아픔은 현재 진행형

손씨의 말이다. 대청호가 생긴지도 벌써 어언 30년이 다 돼가지만 손씨 같은 수몰민들의 애환과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얼마남지 않은 땅도 다 그린벨트다 상수원보호구역이다 해서 각종 규제로 묶여 있어 재산권 행사는 물론 농사를 짓는데도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먹는 물을 보호하겠다는데 무작정 규제를 풀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대신에 적절한 보상을 기대해보지만, 주민들에 대한 지원은 언제나 기대에 못 미친다. 옥천군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이나 수변구역 등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된다. 대대로 이어지던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민들에 대한 보상은 수몰 당시 주어진 얼마간의 보상금이 전부였다.

손씨는 “당시 시골 땅 값이 얼마나 됐겠냐”며 “그 돈 갖고 도시에 나가봐야 집 한 칸 장만하기도 힘들었으니 순진한 시골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었겠냐”고 되묻는다.

이 때문에 수몰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은 적지 않다. 댐이 만들어져 하류지역 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 물을 쓰지도 못하는 상류지역 사람들은 평생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2000년대 들어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대청호 물을 사용하는 하류 지역 주민들에게 물이용 부담금을 거둬 상류지역을 지원하는 사업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이 또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혜택은 크지 않다.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되는 비용은 거의 없고, 관을 통해 환경기초시설이나 도로 등의 기반을 닦는데 주로 투자되기 때문이다. 또 주민지원 사업 비용 중 상당수는 시ㆍ군 단위의 공모 사업 형태로 지원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물이용 부담금이 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변구역 내 토지나 건물을 매입해 오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로 토지매수에 쓰이면서 주민들간 형평성 시비나 매수대상 결정 등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 대청댐 수문 방류 모습.
▲ 대청댐 수문 방류 모습.

경계 넘어선 유역협력체계로 보전해야

수몰민들이 느끼는 이러한 이중고는 옥천군 뿐 아니라 대청호 수몰지역 전체가 마찬가지다. 동구 마산동에 사는 수몰민 송봉호(56)씨는 “정작 이쪽 주민들은 웬만하면 대청호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30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하고 떼를 써봐도 소용이 없는 걸. 아예 지원해 준다고 말을 말든가 아니면 진짜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에 지원을 해 주든가. 조상 대대로 살던 땅 다 내줬으면 먹고 살 수 있게는 해줘야지. 농사지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땅도 안 남아 있고, 그나마도 다 규제 대상이니 뭘 할 수가 있어야지. 피부에 와 닿는 지원이 하나도 없어요. 관리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 놓고, 먹고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은 갖출 수 있게 해줘야지. 왜 정작 그 물은 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다 떠넘기냐 말이지.”

마산동 대청호 수몰 지역은 송씨네가 21대째 대대손손 뿌리를 내리고 일궈온 땅이었다. 수몰 이후 물 바로 위쪽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송씨는 현재 자구책으로 표고버섯 농사를 짓고 있지만 필요한 시설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대청호가 생기면서 이들이 잃은 것은 집과 땅만이 아니다. 송씨는 말한다.

“어려서부터 농정에 관심이 많아 수몰 전에는 동네에서 처음 하우스 농사를 시작하며 젊은 시절 꿈을 키웠지. 수몰 직전 친구들이 다 떠나고 빈집이 부서지던 그날의 삭막함이 아직도 생생해. 그날 내 땅 뿐 아니라 내 꿈도 모두 사라진거여….”

대청호는 그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이지만 정작 인근 주민들에게는 고향을 빼앗고 평생 삶을 옥죄는 원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대청호보전운동본부 임정미 부장은 “상류 주민들이 느끼는 피해에 비해 정작 대청호 물을 쓰는 하류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며 “물은 경계가 없이 흐르지만 상류와 하류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받는 혜택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유역공동체 형성과 협력체계를 통해 함께 가꾸고 보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이종섭·사진=김상구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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