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 23일 자 중도일보 기사의 한 내용이다. 당시 대전과 충남 일부지역에 콜레라 환자가 발생해 정확한 병명도 2주 만에 밝혀내는 등 약 한 달간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의료기반과 위생상태가 좋지 않던 당시를 기억해볼 수 있는 기사이다.
그 후 대전의 의료기반시설은 크게 확장됐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속속 입지하고 전문분야 별 의료기술도 신장세를 보였다. 대전의 의료기반 발전사를 살펴봤다.<편집자 주>
▲ 대전의 보건소직원 들이 여름철 수해지역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해 주민대상 예방접종 하고 있는 모습. |
충남도 100년사에 나와있는 1940년도 대전ㆍ충남지역의 병원은 도립 병원이 3곳 (대전은 1곳)이 입지했다. 또 일본인과 한국인이 각각 운영하는 사립병원 2곳, 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 2곳 등 모두 6곳이 전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대전지역에서 시민들이 종합적인 진료를 기대할 수 있는 의료시설로는 1931년 은행동에 세워진 충남도립의원이 전부였다. 도립의원은 대전뿐만 아니라 전국 17곳에 설치됐으며 내과·외과 등 많게는 8개 진료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그나마 의료실을 충실히 갖춰 당시 조선병원의 주축이었다.
부족한 의료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소규모의 보건소를 만들게 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보건소는 치료보다 예방의학에 전념한다는 목표였지만 부족한 의료기반에 진료업무를 외면할 수 없었다. 1946년 서울에 보건소가 첫선을 보인 이후 대전에는 1949년 1월 은행동 32-1에 보건소가 처음 들어다.
의료보험제가 없던 당시 진료비가 없는 서민들의 발길이 보건소로 이어졌다. 이후 1969년까지 1개의 보건소와 3개 보건지소를 운영하는 체계를 갖췄다. 당시 워낙 열악한 의료인프라 탓에 1968년에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모두 2만 8000여 명이 진료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당시 민간 의료기관이 시민들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4년 발간된 대전시 보건의료사에는 대전지역의 최초 개인의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946년 대전시 은행동 149에 박외과(원장 박선규)의원이 개설돼 진료에 들어갔으며 1933년 임치과(원장 임주혁)와 1941년 김내과의원(원장 김이기) 등이 초창기 병원 중 한국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1970년대 당시에도 중요환자를 담당하는 병원은 시내 중심부에 대부분 위치해 변두리 지역 주민들은 의료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보건소의 출장 진료였다. 경제적 이유에서나 거리가 멀어서 병원을 찾던 주민들은 예방접종을 비롯해 의료시설이 없는 마을에서 평상을 펴놓고 의료진단과 진료를 했다.
▲ 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 치료보다 예방을 강조하면서 예방접종 활동도 활발했다. 사진은 콜레라 예방접종 모습 |
1960년대 예방접종약과 격리병동이 부족해 충분히 치료할 수 없다는 점과 상수도 관리 및 식품위생이 철저하지 못했고, 변소·쓰레기장 등 오염된 환경시설에 쉽게 노출된 점을 고려하면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지금보다 훨씬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로 외지인들이 많이 오가는 특성상 보건위생 면에서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1966년 대전지역 보건소에서 실시한 예방접종 실적을 보면 천연두 2만 5258명, 디프테리아 1394명, 장티푸스 및 파라티푸스 13만 2304명, 콜레라 28만 8840명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같은 예방접종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디프테리아가 26명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뇌염은 40명이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
▲현대식 종합병원의 등장, 민간의료기관 대세=현대식 종합병원이 만들어진 것은 지역의 의과대학이 들어서면서부터다.
1930년 세워진 충남 도립의원이 1967년 충남대 부속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지역에 규모 있는 병원의 시작이었다. 충남 도립의원은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의료시설 지원 협정으로 더욱 진보된 의료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65개 병상 규모로 1966년 충남도립 의료원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이듬해에는 충남대학교가 의과대학을 설립하면서 이곳을 부속병원으로 사용했으며 1984년 문화동 현재 위치로 이전한 후 1988년 충남대학교병원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 기간에 대전에는 대형종합병원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다.1956년 희망의원으로 출발한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은 1975년 가톨릭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인가를 받고 1980년 종합병원이 됐다.
또 을지의과대학교부속병원은 1981년 4월 218병상을 갖추고 대전을지병원으로 개원한 이후 규모 확장해 1997년 1월 을지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명칭변경에 이어 현재 둔산지역으로 이전했다.
1991년 250 병상을 갖추고 산업재해 근로자를 위한 대전재활병원으로 개원한 대전중앙병원은 이후 1992년 종합병원으로 승격한 경우다.
건양대학교병원이 2000년 3월 621병상을 갖추고 개원함으로써 신개발 지역인 대전의 서남부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서비스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대전시 전체 의료기관은 1958년 122개(종합병원 1개, 병의원 83개, 한방병원 24개 등)에 불과했으나 2000년 6월 말에는 1357개(종합병원 8개, 병의원 752개, 한방병의원 261개 등)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2008년 말에는 1883개 의료기관(종합병원 9개, 병의원 984개)을 기록했다.
▲ 1975년 대전의 한 농촌지역에서 펼쳐진 보건소순 회진료 모습. |
대전시 통계연보에 기록된 지역 의료인력 추이를 보면 1958년 일반의사 80명과 치과의사 14명, 한의사 24명 등 대전지역에서 진료를 보는 의사가 모두 118명에 불과했다. 이 당시 대전지역 인구와 의사 수를 비교해보면 의사 1명이 1560명의 시민을 담당하는 꼴이었다.
1970년 의사인력은 일반의사 81명, 한의사 24명 등 모두 328명이었다. 1980년은 667명으로 의사 수는 10년을 주기로 2배 증가했다.
반면, 의사가 증가하는 비율보다 대전지역에 인구 증가 폭이 더 커 1980년 의사 1명이 대전시민 1461명을 담당하는 비율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최근까지 의사 수는 증가했지만 1990년대부터 인구 증가 폭이 둔화하면서 2006년 말 현재 대전지역의 의사는 모두 2775명으로 의사 1명당 인구는 540여 명까지 내려간 상태다.
대전지역의 병상 수도 2008년 말 1만 7421개로 크게 증가했다.
결국, 지역에 의료기반이 닦인 1990년대 이후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대부분 사라진 셈이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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