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미술의 정체성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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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미술의 정체성을 위한 첫걸음

<문화스펙트럼>

  • 승인 2009-10-27 14:14
  • 신문게재 2009-10-28 11면
  • 변상형 한남대 문화예술학과 교수변상형 한남대 문화예술학과 교수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대전 중구문화원과 현대갤러리에서는 `심향 맥전(深香 脈展)-대전·시카고 묵미회展'이 열렸다.

박승무 화백은 한국근대 6대 화가 중 한분이며 설경(雪景)화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1893년 옥천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살다가 생애 마지막 23년을 대전에서 보냈던 만큼 대전과의 깊은 인연은 결국 심향 박승무 화백의 마지막 터전을 보문산 뒷자락 목달동에 마련하게 했다.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전시회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승무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현재까지 한국화단에서 그리고 대전화단을 통해 생생히 이어져오는 심향 선생의 예술정신의 맥을 짚어 보는 데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돌이켜 보면서 이번 전시가 심향 박승무 화백 개인이나 어느 단체를 위한 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대전미술인들의 기억 속에서 퇴색해가고 있는 대전화단의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는 작가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예술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조명과 연구 사업은 시급하다.

이는 한 개인의 작업세계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지역미술문화의 한 축을 세워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단 심향 박승무 화백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고 지역화단의 토대를 다져나가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향은 작가의 외길만을 고집했던 탓에 제자 하나 없었지만, 다행히 어린 시절 그에게 그림을 배웠던 양자(장조카)가 있었는데, 그 양자는 소헌 박건서 화백으로 40여 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지금껏 한인작가들을 지도해오고 있었다.

박건서 화백이 1979년에 창립한 묵미회는 올해로 30주년을 맞고 있는데, 그 곳을 거쳐 간 회원만도 200명이 넘고, 현재 활동하는 회원은 50여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근대화단에 큰 족적을 남기고 대전과의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심향 박승무 화백의 예술정신은 소헌 박건서 화백을 통해서 머나먼 미국 시카고에서 묵미회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대전에서는 지난 2005년 심향의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심향선양위원회가 결성되고 심향 박승무 화백의 예술세계를 연구하며 조명하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 역시 그 사업의 일환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승무 화백의 예술정신을 이어가는 후학들의 작업이 대전에서 비로소 첫 만남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중구문화원'에서는 심향 박승무 화백의 작품과 아들 박건서 화백 그리고 묵미회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현대갤러리'에서는 대전화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함께 진행되어 심향과 그의 유지를 받드는 후학들의 생생한 만남의 자리가 벌어진 것이다.

전시가 있던 날 아침 보문산 목달동 박승무 화백의 묘소 앞에서 묵미회 회원들은 정신적 스승인 심향 박승무 화백을 향한 참배를 드렸다. 그 후 박건서 화백의 고인을 향한 눈시울 적시는 다짐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퍼뜩 유사한 경우가 떠올랐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경우로 지난 8월, 이응노 선생의 프랑스 제자들이 대전을 다녀갔었다. 고암 이응노 선생은 도불이후 1960년, 프랑스 동양미술학교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양화 강습반을 만들었고 지도해 왔다. 그 강습반을 통해 배출된 제자의 수가 3000여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놀랐었다.

더욱 더 인상 깊은 것은 고암 서거이후에도 그 강습반이 단절되지 않고 고암의 부인(박인경)과 아들(이융세)을 통해서 여전히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제자출신들이 2003년 묵기회(墨氣會)를 결성하여 매년 하기강습회와 전시 등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암 이응노 화백이나 심향 박승무 화백의 예술정신은 머나먼 타국에서도 한인작가들과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한국적 상황과 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신적 맥의 고향에서는 오히려 이미 지나간 세대의 화법이나 작가들로 치부되면서 퇴색한 시대의 유산쯤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현재 지역화단의 원천과 뿌리가 되는 대전미술 1세대들에 대한 구체적 연구와 계승사업이 지역미술인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며, 일반인들에게도 생생한 지역역사로서 그들의 작업과 삶이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전 시민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로부터 지역미술의 정체성을 위한 첫걸음은 시작될 것이며, 지역미술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질 것이다./한남대 문화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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