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곤 프랑스문화원장 |
안타까운 점은 이 의욕에 찬 공무원들이 가마솥을 만든 직후에나 “솥이 너무 커서 밥이 제대로 익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깊이 2m가 넘는 솥에서 밥을 푸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3만 명이 함께 모여 식사할 장소와 그릇들은 미리 대책을 세워 놓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튼 필자라도 기중기 기사의 밥 짓는 실력에 대단한 신뢰를 할 수 없는 만큼, 비싼 밥솥 밥을 드시기 고대했던 군민들도 좀 더 인내할 밖에... 게다가 호주에 이 가마솥보다 더 큰 질그릇이 있다는 이유로 기네스북 등재가 물거품이 된 점은 이 가상한 공무원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소식이었지만(무쇠와 질그릇을 같은 선상에 놓는 묘한 민족도 있다!), 이 정도에 포기해서야 어찌 대한민국의 공무원 자격이 있을까? 심기일전하여, 이들은 “현재 1억여원을 들여 가마솥 이용방안을 포함, 군 전체 관광 활성화 용역을 추진 중”이란다.
우리 모두에게 잠재하는 열등감의 집단 치료요법일까? 유난히도 세계 최고, 동양 최고의 수식어가 별별 사안에 첨부되어 신문지상을 난무한 것은 요즈음만의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발 빠른 기업체 홍보실의 전유물이거니 했던 것이, 요새는 TV뉴스의 한 장면, 아니면 신문의 몇 줄을 차지해 보려는 지자체장들의 포부가 이 무의미한 최상급형용사들의 남발을 초래하는 듯하다.
명실상부한 최고라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냐 만서도, 제대로 된 분야에서의 최고가 그리 쉽지 않은 연유로 이러한 기발한 가마솥이 등장했고, 이런 유의 시도는 위의 기사에 따르면 쉽사리 그치지 않을 전망이란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이 필요한 언론의 태도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 할 뿐이다.
우리들 보통사람들의 대화에서도, 검증되지도, 검증할 필요도 없는 최상급의 수식어가 얼마나 남발되는가? 말하는 이들에게, 이런 단어들은 타인들을 최상급으로 수식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에고(ego)를 그 열기에 동반 상승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지니는 듯하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을 누구누구의 1등이 그들에겐 얼마나 중요한지, 소식을 전하는 그들의 열기는, 찌든 생활의 한 켠에 햇빛을 비추려는 일상적인 대리만족의 현상을 훌쩍 뛰어넘는, 측은하기만한 광기마저 엿보인다.
갑자기 우유의 질이 달라질리 만무한데, 김연아의 국제대회 우승은 한 우유제조회사의 매출을 큰 폭으로 향상시키고, 대부분의 국민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듯한 골프의 국제대회 우승소식이 전 언론의 지면을 도배하는 현상이 이러한 집단광기의 한 모습이다.
문제는 이러한 아주 ‘특별“한 일들에 대한 열광과 숭상이 점차 우리 보통사람들의 입지를 비좁게 한다는 점이다. 모두들 영어를 구사해야하고 모두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야지만이 사람구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우리사회의 유일사상은, 이러한 카테고리에 진입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영원한 패배자의 암울한 모습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1등일 수 없는 가장 간단한 진실을, 그리고 우리들이 영위해 가야할 삶은, 그들이 은반이나 골프그린에서 만나는 어려움의 총량보다, 때때로 더한 인내를 요구할 수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한다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닌 자신 속의 자신을 발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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