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규]정성을 다한 그릇은 디자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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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규]정성을 다한 그릇은 디자인을 말한다

[문화초대석]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 승인 2009-10-25 16:43
  • 신문게재 2009-10-26 20면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내게는 예쁜 그릇이 있다. 모양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빛깔이 고운 그릇도 아니다. 오히려 투박하고 부러 한쪽을 쿡 누르고 찢어내 구워져 형태가 반듯하지 못한 몇 점의 질 그릇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쁘고 반듯한 그릇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그릇이 내게는 오히려 못생겨서 예쁜 그릇이다.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 오치규 충남대 예술대 교수
장인의 혼으로 빚어낸 멋진 자기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런 자기와 달리 언제나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매력을 느끼는 때문이다. 질그릇의 이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을 나는 밥도 담고 김치도 담고 가끔은 멋 부린 요리를 담아내는 막 그릇으로 쓰고 꽃을 꽂기도 한다.

그래도 직접 빚어낸 작품이라 일반 그릇과 달리 사람들 앞에 전시되어 제법 호평을 받았었기에 아는 이들에겐 격(?)이 다른 몸임에도 이 녀석을 막 그릇으로 쓰는 것을 보면서 그럴 바엔 차라리 자기가 가져가 고이 모시겠으니 이 질그릇을 자기에게 양도 하라고 떼를 쓰는 지인들도 있다.

 음식이 아니라 정성을 담는 그릇
 모셔두고 감상하는 것도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릇의 용도로 태어나 그릇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는 그릇에게도 썩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름지기 사물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다. 이유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법이고 때문에 멋 중에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최고로 꼽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성에 충실하다 보니 종종 그릇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빚고 굽기도 했으나 유독 못생긴 몇 점의 질그릇이 내게 예뻐 보이는 것은 화려한 또는 맛있는 음식에 가리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그릇의 모습이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습관적으로 음식을 담아내던 그릇에서 그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조리한 이의 정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외양을 가꾸고 뽐내기에 여념이 없다. 성형이나 미용을 위한 병원과 피부관리 센터들도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남자들의 피부관리나 화장도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큰일이다’ ‘세상이 병든다’‘문제다’ 말들 하지만. 하지만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이‘마음이 예뻐야 한다’, ‘아니다 일단 예쁘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흑백으로만 가르려고 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선들이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 아니라 뚝배기와 장맛
 ‘뚝배기 보다 장맛’이란 말이 있다.“겉모양은 보잘것없으나 내용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정작 훌륭한 장맛을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뚝배기의 보잘것없음을 더 비난하고 폄하하며 희열을 느끼는 듯하다. 경험적으로 장맛은 역시 뚝배기에 담겨야 제 맛이라는 걸 우리는 누구나 안다. 조화의 관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닌 ‘이것과 저것’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뚝배기보다 장맛’은 ‘뚝배기와 장맛’ 이어야 옳다.

 디자인은 조화다. 창조는 조화의 과실이다
 디자인의 매력은‘나 홀로’가 아니라‘더불어’에 있다. 순수미술과 달리 응용미술의 범주로 분류되는 디자인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한 학문이다. 나와 다른 이들의 경험과 공감을 버무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 함께 즐거워하는 이타적 행위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요소와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조화롭게 어울려야 매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숲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관점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라는 관점으로 함께 어울려야 새로운 창조의 과실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소통이다. 창조와 재미를 추구하는 세상은 이것에 기반해야 한다. 지금은 마음의 그릇을 다시 빚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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