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율로]자연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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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율로]자연과 사람

[금요논단]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 승인 2009-10-22 18:32
  • 신문게재 2009-10-23 20면
  • 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부친께서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던 덕분에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살던 집의 뒷산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철을 따라 탈바꿈하며 한여름이면 그냥 마셔도 될 듯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친구들과 함께 벌거숭이로 물놀이하노라면 더위는 온데간데없다.

▲ 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 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가을철엔 온통 산딸기로 물들인 숲 속을, 포식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헤매다가 어느덧 땅거미가 질 무렵 산에서 내려올 때면 마을 군데군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자락은 정겨운 동양화 한 폭을 연상케 한다.

 내가 살던 관사 앞 텃밭에는 부친과 함께 일구는 갖가지 채소가 풍성하여 우리 집 자급자족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산 중턱에 있던 관사는 물 얻기가 어려워 잘 믿기가 어렵겠지만 열길 정도 되는 샘에서 5분 이상 두레박을 길어 올려야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서는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힘들었다는 기억보다는 갖가지 채소들이 성장하기까지 날마다 물을 주며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희열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무, 배추, 토마토, 고추, 가지 하며 감자, 고구마 등등 가을에 수확할 때면 농부의 뿌듯함과 마음의 풍성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요즈음은 돈을 내고 농장에 가서 수확하는 기쁨만을 사기도 한다고 한다.

 이 또한 이해할만한 즐거움이지만 기르는 정에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즐거움을 느껴본 이들은 주말농장을 장만하여 찌든 도시생활에서 탈피해보려고 한다.

 한편,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앞이 답답하기만 하다. 학교에 다녀와서 서너 군데 학원을 돌아다닌 후에야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 일쑤다. 책상 앞에 붙어 있기만 하면 더는 부모로부터 아무런 질책을 받지 않는다.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더라도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학교에서 입시에 치중하느라 예능과목을 소홀히 하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전일 것이다.

 인터넷에는 독후감을 써주거나 숙제를 해주는 사이트(site)들이 즐비하다. 나의 초등학교시절에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지금은 더욱 힘든 것 같다. 시간이 나면 요즈음은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방을 보아도 인공적인 환경에 휩싸여 있어 벗어나기가 어렵다.

 외래로 병원에 오는 청소년들을 보면 아토피에 여드름에 그리고 습진이나 탈모증에 고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스트레스에, 친환경이지 못한 거주환경에, 또한 인스턴트식품에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과는 격리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간혹 일 때문에 힘든 다든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풍성했던 자연과 교감했던 추억의 상념에 빠져든다. 당시로선 나름대로 역경을 이기며 무언가를 성취했었다는 성취감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삶의 피로로 멍해진 나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힘으로 충만케 해주는 숨은 에너지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사람은 창세기에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씀대로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연과 동거하며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의 자녀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며 어떤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편하게 살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음의 상태나 인격의 상태에는 그다지 발전은 없었던 것 같다.

 주위나 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생각하게 되며 사랑이나 배려로 나를 채우기보다는 욕심으로 채우는 경향이 심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가족들과 함께 자연으로부터 배우며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누리고 싶다. 삶이 다소 느리며 얻는 것이 적고 불편함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이는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사랑을 가져다주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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