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철 시인 |
갑오년 죽창 들고 우금치 고개 뛰어넘다가 뼈를 묻은 의병장 할아버지 후손이라는 정 씨의 주사(酒邪)를 사실여부까지 확인할 이유가 없지만 빗이나 손톱깎이 노란 모자를 팔다가 치켜뜬 그의 눈빛이 코밑까지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빛 탓이다. 참수 직전, 서울행 가마에서 쏘아보던 녹두장군 흑백 사진의 눈빛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눈빛이 게을러질 때마다 정수리를 찌른다.
이번에는 기역자로 꼬부라진 그 할머니를 말하려 한다. 기실 나이 오십 장년의 부끄러움에 대한 전초전이었다. 먼저 퇴짜 맞은 원고지 다발 들고 휘청이는 늦가을 사내의 풍경이다. 재탕 삼탕으로 짜맞춘 다음 출판단지 글쟁이들의 술골목 찾아 결전을 치르러 가던 합정역 5번 출구 주유소 모퉁이 장난감 좌판이 그 배경이다. 영락없는 소꿉장난 개다리 소반이 그니의 절박한 생존터로 오버랩된다.
일단 아파서 다가갔다는 표현이 솔직한 고백이다. 찐감자 옥수수 고구마 팔던 패랭이꽃 시든 향기 양갓집 잔상의 그 노파는 고개를 들지 못해 시선을 마주칠라 치면 흡사 노려보듯 몸을 돌린다. 오물덩이로 뒹굴자는 좌우명으로 고구마를 샀고 당연히 거스름돈 받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기껏 건빵 던지듯 시혜정신으로 자족하는 인격일 뿐이라며 자학적으로 돌아섰다. 그렇게 싸구려 삼류 감상에 젖어 저무는 지하계단 들어서며 뜨거운 감자 속살 깨물며 공복을 달래는 중이었다. 기실 배도 조금 고팠다. 매연과 빵빵대는 자동차 소음으로 속이 메스꺼워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꾹꾹 누르는 중이었다.
아파트 텃밭의 서리 맞은 호박꽃 이야기다. 기실 놈들은 꽃 피는 봄날부터 자양분 부족으로 간신히 흐느적흐느적 누리끼리한 헛줄기나 뻗는 정도였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잊은 채 출신 성분과 성장환경이 모두 열악했던 그 풋것들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그 연놈들이 잡풀의 근성으로 버텨내었던가. 그렇게 힘겨운 영양실조의 봄 여름을 외롭게 보내었단다.
그러더니 풍성한 엽록소 잔치꾼들 모두 떠나간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가을을 맞이한 것이다. 장하다. 늦가을 호박밭 시든 호박잎 사이로 노란 불꽃 지핀 앉은뱅이 꽃들이 울타리 넘어 계단 모서리에 줄기를 뻗는다. 가느다랗게 쇠해지는 줄기 끝으로 암꽃 수꽃 합체로 피었다. 큰일났다. 이웃집 울타리로 서리 내릴 그 순간까지 기어이 천사의 날개를 피우겠다는 심뽀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했던가. 자세히 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이파리들도 마른 놈 성성한 놈까지 제각각으로 씨근덕씨근덕 매달려 있다. 늦가을 추위로 허우적허우적 움츠린 납덩이 벗들에게 단내 풍기는 호박꽃 수술 몸내음으로 얼어붙은 축복을 터뜨리려 한다. 찬바람이 더 아늑하다며 아파트 공터 울타리로 정분 나누는 생명력이 때때로 무섭다.
가을이다. 낙엽이 수제비처럼 뚝뚝 떨어질 즈음 나는 솥단지를 걸고 싶다. 억새풀로 아궁이 활활 지펴 ‘국밥과 사랑’ 후끈하게 나누고 싶다. 그니들의 뿌리가 되고 풍성한 그늘이 되고 싶다. 그 맹세 수도 없이 씹고 또 씹었다. 그런데 굳은 몸이 막대기처럼 접혀지지 않는다.
여전히 앉은뱅이 빗장사 정씨와 기역자 고구마 할머니 그리고 서리맞은 늦깎이 호박꽃들을 내 형제로 끌어안지 못한다. 자유와 정의를 외치던 벗들, 붙박이로 스크럼을 풀지 않는데 뿔뿔히 흩어진 언저리 피붙이들은 따땃한 구들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아니다,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움츠린 자라목을 세우지 못하는 나는 분명히 관념론자일 것이다. 기껏 밤이 되어서야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