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만신(여자 무당)이 펄떡펄떡 뛰는 다른 지역의 선굿과는 달리 대전을 중심으로 한 앉은굿은 법사가 신당 앞에 앉아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독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전을 비롯한 충청지역은 앉은굿의 전통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앉은굿 중심의 무속문화권을 이룬다.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는 속담도 있지 않느냐”는 신 법사는 “조상신을 달래고 원귀를 호통 쳐 보내는 데는 경문이 최고”라며 대전 충청의 앉은굿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전시 중구 문창동에서 나고 자란 신 법사가 무속의 길로 들어선지 올해 59년째다.
열세 살 때부터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갑자기 몸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그는 무작정 스님을 따라 절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했으나 머릿속에 불경은 들어오지 않고 경문은 귀에 쏙쏙 박히더란다.
“불경을 하는 청(淸)이 좋아 절의 신도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는데 정신쇠약 상태에서 조상(조부)이 현몽하고 신이 오는데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5년 만에 다시 속세로 내려와 굿판을 쫓아다녔지.”
유성환에게 불경(佛經)을 배운 신 법사는 홍신철에게 무경(巫經)을, 김수복에게 고장(鼓杖)을 배운 후에도 한씨보살, 구춘근, 고기선 등으로부터 무경과 고장을 익혔다.
훌륭한 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청(一淸), 이고장(二鼓杖), 삼문서(三文書)의 세 가지를 갖춰야하는데 경을 읽는 목소리가 맑고 잘 넘어가야 하며 장단을 잘 쳐서 신명나게 하고 경문의 사설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 법사는 이 세 요소를 두루 잘 갖춘 전국 유일의 앉은 굿 보유자로 앉은굿에서 가장 정형화된 대전의 안택굿을 행할 수 있고 지금은 거의 소멸된 미친굿을 1940~50년대 전통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1994년 대전시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그는 제1회 전국팔도굿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한 후 대전엑스포 때 미친굿과 안택굿 공연을 하고 2002년 월드컵 때도 성공기원 풍물굿을 펼쳤으며 16일 오후 1시에 서대전시민공원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대규모 굿행사를 마련한다.
또 6차례에 걸친 자료집 발간을 통해 앉은굿 기록화와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법사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내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며 좋은 일”이라며 “그러나 수천 년 이어져온 우리의 토속신앙인 무속을 미신과 잡신앙으로 치부하며 멸시하는데 대해서는 속이 상하다”면서 무속을 민간 신앙으로 봐 주길 희망했다.
내년이면 무속인이 된지 60년이 되는 신 법사의 소망은 앉은굿 박물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같이 해온 무속의 맥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굿의 종류와 경의 내용, 굿 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전수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대전 충청의 앉은굿을 잘 계승하라고 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줬는데 이 일을 못할까 걱정이 돼.”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업(業)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노법사는 아직도 북채만 잡으면 힘이 솟는단다.
※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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