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우주선이 불시착했다. 정부는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 9’에 이들을 임시 수용했다. 9구역에서 범죄가 급증하자 외계인들을 이주시키기로 한다. 이주 책임자 비커스는 알 수 없는 외계물질에 노출되는데.
외계인과 지구인이 만났다. 대강 우리가 아는 영화들은 처절하게 싸운다. 외계인이 막강 파워로 공격하고 쫓기던 지구인들은 목숨을 건 기지로 외계인을 물리친다. 할리우드가 만들어놓은 이런 공식을 ‘디스트릭트 9’은 뿌리째 뒤집는다.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지구에 이주해온 소수민족일 뿐이다. 이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건 지구인이다. 지구인은 외계인에게 들어가는 세금을 아까워하고, 그들의 약점을 악용한다. 힘 있는 자들은 기만적인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한 쪽에선 동물의 권리를 지키려는 집단도 존재하는 사회답게 인권단체가 목소리를 낸다. 범죄조직은 폐쇄적 상황을 이용해 암거래로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
영화는 인류가 저질러 온 일, 힘없는 이방인을 대접한 방식을 근거로 외계인 난민들이 겪는 혹독한 상황을 척척 그려낸다. ‘디스트릭트 9’는 이처럼 정치적인 함의로 가득 찬 SF 우화다.
제목은 분명 케이프타운의 ‘디스트릭트 6’에서 따왔을 것이다. ‘백인전용’으로 지정돼 흑인 6만 명을 이주시킨 구역이다. 지구인이 외계인을 다루는 방식은 ‘아파르트헤이트’나 ‘나치’, ‘종족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모든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디스트릭트 9’를 올해 개봉된 SF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보는 이유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낯선 태도 때문이다. 실은 깊고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겉으론 마치 우스꽝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농담을 하고 지나가는 체하는 이 영화의 화법은 그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더욱 쇼킹하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식의 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은 인간의 모순과 잔혹성을 더 사무치게 전달한다. 그렇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의 한갓된 탐욕에 있다.
그렇다고 너무 정치적으로 볼 건 없다. SF 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영화는 ‘에어리언’ ‘플라이’에서 ‘트랜스포머’에 이르는 수많은 SF 영화에서 익숙한 설정들을 조합하고 변용해 적절하게 써 먹는다. “아, 저 장면 그 영화에서 봤지”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후반부엔 처절한 액션도 펼쳐진다. 자신의 근본이 충청도임을 까맣게 잊은 어느 고위 공직자와 달리 영화는 자신의 근본이 SF임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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