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형사 클라인은 제약회사 회장으로부터 실종된 아들 시타오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홍콩으로 간다. 암흑가의 보스 수동포 역시 연인이 시타오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역시 시타오를 찾아 나선다. 세 남자의 인연은 순탄치 않을 운명이었다.
트란 안 홍 감독이 우리와 처음 인사를 나눈 건 1993년 ‘그린 파파야 향기’를 통해서였다. 2년 뒤 ‘씨클로’를 내놓곤 소식이 뚝 끊겼다. 2000년 ‘여름의 수직선에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국내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14년 만에 만나는 그의 영화가 된다.
우아하고 감미로운 세계. 트란 안 홍의 영화는 늘 그랬다. ‘그린 파파야 향기’도, ‘씨클로’도, 영화에 담긴 현실은 남루하고 고단하고 참혹할지라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꿈을 꾸는 마음, 그 자체였다. ‘나는 비와…’도 꿈속을 걷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악몽이다. 지옥도와 같은 지독한 악몽. 필경 가위에 눌리고 말 악몽이다.
영화는 누아르물 모양새를 띠지만 보여주는 것은 각기 다른 두려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세 남자의 심상풍경(心想風景)이다. 감독은 내면속의 근원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처절하게 드러내면서 구원과 속죄에 대해 묻고자한다.
이병헌이 연기한 암흑가의 보스 수동포를 보자. 사람에게 망치질을 해대고 그 피에 미끄러지는 잔혹한 인물인 그도 두려움에 떤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격정적인 분노로 표출된다. 그에게 사랑은 곧 구원. 수동포에게도 구원은 비켜갈 수 없는 존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과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다. 사실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에서 이야기와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진 영상, 그것조차 절제하는 그의 영화 언어는 시(詩)를 닮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비와…’는 좀 심하다. 마치 이해할 수 있겠어, 하고 관객을 시험하는 듯하다.
포스터를 보고 한미일 미남배우들이 등장하는 긴박한 액션 스릴러나 범죄물일 것으로 기대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크게 실망할 게 틀림없다. 불친절한 연출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면에 짜증을 내고 도중에 극장을 나설 지도 모른다. 어둡고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무겁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그나마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것.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고 할까. 이 불친절한 감독은 어떤 게 구원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답은 물론 관객이 찾으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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