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 고통과 구원에 대한 질문

  • 문화
  • 영화/비디오

근원적 고통과 구원에 대한 질문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감독: 트란 안 홍. 출연: 조시 하트넷,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 승인 2009-10-15 17:58
  • 신문게재 2009-10-16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전직 형사 클라인은 제약회사 회장으로부터 실종된 아들 시타오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홍콩으로 간다. 암흑가의 보스 수동포 역시 연인이 시타오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역시 시타오를 찾아 나선다. 세 남자의 인연은 순탄치 않을 운명이었다.


 트란 안 홍 감독이 우리와 처음 인사를 나눈 건 1993년 ‘그린 파파야 향기’를 통해서였다. 2년 뒤 ‘씨클로’를 내놓곤 소식이 뚝 끊겼다. 2000년 ‘여름의 수직선에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국내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14년 만에 만나는 그의 영화가 된다.

 우아하고 감미로운 세계. 트란 안 홍의 영화는 늘 그랬다. ‘그린 파파야 향기’도, ‘씨클로’도, 영화에 담긴 현실은 남루하고 고단하고 참혹할지라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꿈을 꾸는 마음, 그 자체였다. ‘나는 비와…’도 꿈속을 걷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악몽이다. 지옥도와 같은 지독한 악몽. 필경 가위에 눌리고 말 악몽이다.

 영화는 누아르물 모양새를 띠지만 보여주는 것은 각기 다른 두려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세 남자의 심상풍경(心想風景)이다. 감독은 내면속의 근원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처절하게 드러내면서 구원과 속죄에 대해 묻고자한다.

 이병헌이 연기한 암흑가의 보스 수동포를 보자. 사람에게 망치질을 해대고 그 피에 미끄러지는 잔혹한 인물인 그도 두려움에 떤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격정적인 분노로 표출된다. 그에게 사랑은 곧 구원. 수동포에게도 구원은 비켜갈 수 없는 존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과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다. 사실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에서 이야기와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진 영상, 그것조차 절제하는 그의 영화 언어는 시(詩)를 닮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비와…’는 좀 심하다. 마치 이해할 수 있겠어, 하고 관객을 시험하는 듯하다.

 포스터를 보고 한미일 미남배우들이 등장하는 긴박한 액션 스릴러나 범죄물일 것으로 기대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크게 실망할 게 틀림없다. 불친절한 연출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면에 짜증을 내고 도중에 극장을 나설 지도 모른다. 어둡고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무겁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그나마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것.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고 할까. 이 불친절한 감독은 어떤 게 구원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답은 물론 관객이 찾으라는 거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