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차별화를 못 견디고 무너져 내린 중부권 서점의 맏형, 1957년생 대훈서적의 몰골에서 쑹덩 잘려나간 한밭 정신의 기둥 하나를 본다. 화장실같이 익숙한 공간들, 베스트셀러 코너에 난생처음 진열됐던 내 책들도 안됐다. 독자인 소비자는 역시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2만원과 1만9900원의 차이를 느낀다. 홈쇼핑에서처럼 ‘얄짤없이’ 9자 돌림 29900원, 59900원을 2만원대, 5만원대로 여기는데, 바로 왼쪽자리 효과다.
숫자가 시작되는 맨 왼쪽에 집중하면 책값 10% 할인에 쿠폰과 마일리지의 간접 할인은 대세를 가름할 큰 차이다. 1만원짜리 단행본을 9900원도 아닌 9000원에 파는 우세한 유인전략에 힘입어 온라인서점은 매출 점유율을 30%로 늘렸다. 읽기는 오프라인서점에서 공짜 해결하고 단수가격을 활용한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산다. 흔한 충동구매조차 책에는 예외다.
2003년, 그해 늦봄의 악몽은 이 가을에 재연된다. 대전 롯데백화점 내 세창문고와 심지어 직영점을 거미줄처럼 늘리는 교보문고마저 대전점 폐점을 단행했다. 경제논리가, 시장이 제일 유력한 검열장치임을 증명하듯 부산 청하서림·면학도서, 광주 삼복서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 닫았다. 위탁거래와 현금거래 등 복잡한 도서 유통 체계와 도서정가제로 밀치락달치락하는 사이, 지역 서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산한다.
12년 전 5000개 넘던 전국 서점 수가 이제 2000개 이하로 줄었다. 출판유통 바로잡기는 독서문화가 영상문화에 치여 설 땅이 준 것과는 다른 각도이다. 딱하지만 대훈 사태에 뾰족한 수단과 방법은 없다. 그럴지라도 알게 모르게 독서 편식을 조장한 일부 단체의 책읽기 권유는 감이 떨어진다. 모금 운운의 ‘구서운동(救書運動)’은 서점업계 생리와 소비자 심리를 꿰뚫지 못한 계몽적 방식이다. 지역 기업 인수도 사실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이렇게 진퇴양난일 때 사람들은 기적을 꿈꾼다. 빨간 클립을 15번 교환만에 2층집으로 물물교환한 캐나다 청년, 전답과 놋요강을 맞바꾼 할아버지의 모험담을 빌려서라도, 대훈서적이 정보의 맛과 장소성을 깨우치고 우리 정신의 틈새를 막아주며 거기 있길 바란다. 세계의 패러다임, 인식론적 틀이 바뀐 디지털시대에도 라디오만한 영화 없고 책만한 라디오 없다고 믿는 애독자로서, 그런 기적이라도 좋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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