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오]우리말 지키기와 언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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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오]우리말 지키기와 언론의 책임

[목요세평]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

  • 승인 2009-10-14 18:11
  • 신문게재 2009-10-15 20면
  • 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
 자기의 말과 글을 바르게 지키고 가꿔나간다는 것은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즉 그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계승 발전시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한 때 중국대륙 전체를 지배했던 만주족이 지금은 그들의 언어도 문자도 잃어버린 채 한족에 흔적도 없이 흡수 동화되어 버린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말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언중이 잘 사용하면 아름답게 발전해 가지만 함부로 쓰면 금방 피폐해 진다는 것은 다 아는 상식이다. 그리고 이에는 언론의 구실이 무엇보다도 큰데 오늘날 우리 언론이 이 소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
▲ 전용오 배재대 인문대학장
 언론매체를 통해 본 우리말 오남용의 문제는 첫째로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의 남발을 들 수 있다. 가짜 또는 모조품을 가리키는 ‘짝퉁’은 표준어처럼 되어 버렸고, ‘도우미’는 봉사원 · 안내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다. 문법에도 안 맞는 ‘몰래 카메라’도 이젠 일반화 되어 언젠가는 사전에도 올라갈지 모른다. 미국에선 ‘스파이 카메라’라고 하는데 ‘숨은 카메라’(숨은 그림이라 하듯이)나 ‘비밀 카메라’로 쓰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음 둘째는 관용어의 일상적인 파괴를 지적할 수 있다. 요즘 언론에서 ‘일석이조’는 ‘일석삼조’나 ‘일석사조’로, ‘일거양득’은 ‘일거삼득’이나 ‘일거사득’으로 더 많이 쓰인다. ‘칠전팔기’는 홍수환 신화 이후 ‘사전오기’로 바뀌더니 지금은 재기한 횟수대로 ‘삼전사기’니 ‘오전육기’니 마음대로 부르는 말이 되었다. 수천 년간 내려온 관용어를 이렇게 마구 파괴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셋째는 빈발하는 맞춤법의 오기를 들 수 있다. 주로 TV자막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지만, ‘안돼요’를 ‘안되요’로 ‘웬일’을 ‘왠일’로 ‘밤새워’를 ‘밤세워’로 ‘깎다’를 ‘깍다’로 표기하는 것 등은 비일비재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을 자주 봐서 맞춤법은 어지간히 배우고 졸업했는데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질 않는지 궁금하다.

 다음 넷째는 어휘사용에 있어서의 부적절성이다. 명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객지에 살던 사람이 고향을 찾는 것을 ‘귀성(歸省)’이라 부르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고향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귀경객(歸京客)’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지방에서 다른 지방을 왕래하는 사람도 있고 지방에서 서울을 방문하고 다시 지방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모든 사람을 다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부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문이나 방송이 서울 사람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울 중심적 용어인 ‘귀경’보다는 보편성을 띈 ‘귀환(歸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또 언론에서 흔히 접하는 말로 ‘영부인(令夫人)’이 있다. 이 말은 지금 서양에서의 퍼스트레이디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의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 유독 국가 원수의 부인만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떻든지 간에 “영부인께서도 안녕하신가요?”라고 쓸 수 있는 말이 영부인이다. ‘따님’ 대신에 ‘영애(令愛)’라고 할 수 있고 ‘아드님’ 대신 ‘영식(令息)’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대통령 부인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각하’에 짝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인 것 같다. 그러므로 원래의 뜻과도 다르고 시대에도 맞지 않는 ‘영부인’보다는 대통령 부인 아무개 여사 또는 아무개 씨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어휘사용의 오류 중에 ‘우리’와 ‘저희’의 혼동이 있다. ‘저희’는 ‘우리’의 겸양어이지만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면 ‘저희’라고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우리’라고 해야만 한다. 식구끼리 말할 때 ‘저희 집’이라 하지 않고 ‘우리 집’이라 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회사 직원회의에서 마치 외부사람에게 말하듯이 “저희 회사는...”이라고 한다든가 토론회 석상에서 “저희 나라는...”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말을 바르게 가꿔나갈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만 위에서 보듯 역시 주된 부분은 언론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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