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철 대전예고 이사장 |
물론, 어느 고대 사회의 건국신화와 마찬가지로 신화일 뿐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 그러나 건국 후 로마는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공화정을 거쳐 제정시대로 이어지는 1000년의 기간에 그 어느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역사를 이루었다. 그 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몇가지 중 하나는 카이사르가 도입하고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꽃피워진 세계최초의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 로마제국이다.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제국이 존재하였으나 로마만큼 다민족 다문화 된 제국은 없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다민족 다문화 모두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물론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의 이러한 포용정책에는 국내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정치적 목적이나 오늘날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전략이 숨어있었으나, 2000년전 이미 피 지배민족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은 이 두 지도자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도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로마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낼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들은 정복된 민족의 풍습과 종교를 존중하고 인정하였다. 로마유적이 가장 잘 보존되어있는 알제리의 팀가드 유적에는 로마인복장을 한 아프리카 부부와 그 위에 태양신과 달신 그리고 로마신이 함께 있는 석물 조형이 발견되었다.
이는 로마가 이 종교에 대한 배려와 타문화에 대한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 그들은 일본의 식민지배처럼 상대방을 노예화 하려고도, 동화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대신 팀가드에서처럼 잘 갖추어진 신도시 건설을 통해 원주민들에게 선진문물의 소개와 안락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자발적 선택을 이끌어 냈으며, 그들을 로마시민의 일원으로 만들어나갔다. 이른바 상향평준화였다.
정복자와 피정복자로 만난 고대 로마인과 이민족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현재 사회 곳곳에서 이질적 개념이 충돌하고 있다. 지난 60여 년의 대한민국 역사의 속도만큼 우리에겐 해방 전 세대, 해방 후 세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그리고 소위 신세대라 불리 우는 70년대 이후 세대 모두가 한 공간 속에 숨쉬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빈부에 의한 계층간 갈등,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영호남 지역갈등, 아직 정치쟁점화 되진 않았으나 곧 될 수 밖에 없는 수도권과 비 수도권의 갈등구조, 여기에 이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일원이 되어가는 100만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 이들이 서로 원하는 바를 아직 우리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권, 경제집단, 심지어 노동단체들까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란 단어는 실종 된지 오래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상대의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Nudge)’의 리더쉽이 2000년 전 로마에도 있었음을 상기해보자.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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