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에 임명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다. 비교적 개혁적 성향을 보인 경제학자이고, 지난 대선에서는 당시 여당의 대권 후보로서 거론된 사람이기에 보수적 성격을 갖는 현재의 여당으로 말을 갈아타는 것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는 비아냥거림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4대 강 살리기를 비롯해 감세정책, 재벌정책 등 현 정부의 여러 경제정책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많이 한 학자가 하루아침에 이명박 정권에 참여하는 모습은 일관성을 상실한 행동이다. 더구나 총리직을 수락한 이유가 대통령을 만나 보니 자기와 경제철학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말에서는 비굴함까지 느껴진다. 차라리 보수일변도로 흘러가는 현 정부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기가 참여하여 중도 실용의 정책을 펼쳐 보고 싶어 했다면 소신을 지키려는 학자로서 훨씬 당당했을 것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종결되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공직 후보자로 선정하였을까 할 정도로 흠이 많은 인사다. 강부자 정권, 고소영 내각이라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가? 그런데 이들 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보수 언론의 모습에서 일관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행동을 본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보여 주었던 추상같이 가혹한 잣대는 여지없이 무뎌졌다. 당시에는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어긋나는 사안이 불거지면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공직자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그러나 이번에는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등 실정법을 위반한 후보자에 대해 업무능력이 있으면 됐지 너무 엄격하게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이 현저히 다른 이른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보이는 일관성을 상실한 행동은 과거 10여 년 동안 국민적 노력과 혹독한 검증과정을 통해 어렵게 형성된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기준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가 진정 무엇인가 묻고 싶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자기의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소신을 지키는 지사(志士)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작은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도 쉽게 말과 행동을 바꾸어 버리는 변절의 시대에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양심이 그립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조국 통일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평생 일관된 행동을 보인 전직 두 대통령의 떠난 자리가 이 가을에 더욱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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