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품과 천막을 제작해 판매하는 최 씨의 상가는 대전천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6·25전쟁 때 함경남도에서 피난 내려온 부모가 이곳 중앙시장에 정착하면서 대전사람이 됐다는 최 씨는 현재까지 줄곧 대전천과 목척교를 직접 보며 지내왔다.
최 씨는 “중교다리 밑은 초등학교 또래의 친구들이 물놀이하던 단골장소였다”고 회상했다.
또 상수도시설과 주변에 목욕탕이 따로 없어 몸을 씻을 수 있는 여건이 여의치 않던 당시 정월 대보름만 되면 대전천은 목욕재개하려는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었단다. 아낙내들은 저녁에 모여 대전천에 몸을 담그고 맑은 하천물에 몸을 씻었다는 것.
“정월 대보름에 대전천에서 남녀가 장소를 달리해 몸을 씻는 것은 연례행사였어요. 이 때 성인 남성들은 몸을 씻는 괜한 오해가 생길 까 여성과 마주치지 않으려 대전천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가곤 했습니다”
최 씨는 함경도에서 피난온 부모님을 따라 대전 중앙시장에 정착한 만큼 당시 대전천 둔치와 중앙시장 사이에 번성했던 재래시장에 대한 기억도 떠올렸다.
“군복을 염색한 의류 등 군수물자를 거래하는 시장이 대전천 둑과 중앙시장에서 성황을 이뤘어요. 대전천을 낀 중앙시장에서 물건을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하던 시기였지요”
목척교에 대해서도 최씨는 대전의 상징적인 다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시민과 차량이 오가는 다리로 목척교부터 대전역까지 이어지는 현란한 조명의 상가들이 특이했다는 것. 대전천에서 시작해 중앙시장까지 이어지는 골목도 주말이면 물건을 사려는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최 씨는 “목척교는 대전이 성장해 가며 외곽으로 뻗어가는 데 거치는 징검다리 같은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앞으로 이어질 대전천·목척교 복원사업을 기억 속에 대전천을 되찾을 기회로 기대를 걸고 있었다. 홍명상가 등 하천에 덮개를 씌워 만든 건물을 걷어내고 주민들이 언제든 하천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대전천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전락해 아쉬웠습니다. 복원사업을 통해 예전처럼 시민들이 대전천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씨의 눈에는 대전천의 옛 모습 찾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났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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