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근 이동훈미술운영위 부위원장 |
이동훈 미술상은 이동훈이라는 개인의 이름을 높이는 상이 아니라 작가이며 교육자였던 고 이동훈 선생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작품세계를 다시 보면서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아이콘을 만들어 내는 데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동훈 선생은 대전시의 형성기인 1940년대 초에 대전에 정착하여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이 지역에서 대전·충청미술을 태동시키고 1968년 정년퇴임 할 때까지 지역미술의 토대를 다지고 발전시켰다.
선생은 계룡산, 동학사, 유성의 과수원, 목장, 정물, 소, 농촌 풍경 등 1940-1960년대의 충청·대전의 향토색 짙은 풍광과 소박한 자연을 굳건한 필치로 그려내면서 이 지역의 미술계를 이끌고,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서양화가였다.
교육자로서 엄격하고 겸손한 태도로 사도의 길을 곧게 지켜 교육계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국전 문공부장관상 수상,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추대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임으로써 작가라는 의미조차도 생소했던 이 지역에 미술의 씨를 뿌리고, 작가의 길을 제시하고 가꾸었다.
퇴임 후에는 서울로 이주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과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 등 바쁜 일과 속에서도 틈틈이 끊임없이 이 지역을 찾으며 충청·대전미술의 발전에 큰 애정을 가졌다.
이동훈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는 1945년 해방, 1950년의 6·25전쟁, 1960년의 5·16혁명 등이 이어진 격동의 시대로 절대 빈곤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우리의 정치와 사회가 불안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기에도 이동훈 선생은 문화예술의 절대 낙후 지역인 이 지역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작업에 매진하였으며 그 흔적은 작품과 40여 년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그의 일기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대전을 미술의 불모지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지역의 한계를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미술의 태동기에 크게 뒤지지 않는 시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이 지역에서 묵묵히 작가의 길을 걷고 씨를 뿌리고 있었음을 되새기며 우리의 미래를 모색해본다면 이동훈 미술상은 우리 미술계에 하나의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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