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정훈 기계연구원 시스템엔지니어링연구본부장 |
특히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해군의 Type 42 구축함 HMS Sheffield 및 1987년 중동전에서 미국해군의 프리깃함 USS Stark(FFG-31)의 Exocet 미사일 피습과 2000년 미국해군의 이지스급 구축함 USS Cole(DDG-67)에 대한 자살 보트테러공격을 경험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해군 국가에서는 함정의 생존성 강화 설계기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함정의 생존성 향상을 위해서는 매우 많은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비용대비 효과의 최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생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간의 절충(trade-off)을 통해 균형 잡힌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반영한 함정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해군도 함정 획득사업에 있어서 생존성 강화 대책 마련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라기보다는 다양한 생존성 구성요소 각각에 대해 개별적 관점에서만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함정 획득 시간 단축 및 비용 절감이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최적의 함정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존성 구성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는 함정 생존성 강화 설계기술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함정 생존성 강화 설계기술의 선구자가 누구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온고지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함정 생존성 강화 설계기술의 선구자는 다름 아닌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23전 23승의 신화를 창조한 이순신 장군이며, 그 중심에는 거북선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북선은 전투 중에 노를 젓는 군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판으로 배를 덮은 2층 구조의 판옥선(1555년, 명종 10년에 건조)을 이순신 장군이 조선기술자 나대용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돌격 철갑 전투함이다. 현재의 기술적 관점에서 생존성 강화를 위해 거북선에 적용된 당시의 신기술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거북선은 왜적의 옥선을 사용한 게릴라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판옥선보다 작으면서 속력은 빠른 즉, 기동성을 대폭 향상시켰다. 수동 방어체계로서 철판으로 배를 덮어 군사와 각종 장비들을 왜적의 포탄과 화살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또한 전투 중에는 돛을 감추고, 뱃사공들을 고용하여 배를 추진하여 왜적의 불화살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배의 조정성능도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철판에 뾰족한 침들을 부착하여 배에 뛰어 드는 왜적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한편, 능동 방어체계로서 함포뿐만 아니라 배의 앞모양을 용의 얼굴모양으로 하여, 입을 통해 화염을 방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용의 입을 통해 방출되는 화염은 야간 전투 시 적의 사기를 꺾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거북선은 전투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위협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생존성을 극대화한 그 당시 최고의 전투함이었다. 그러나 함정을 하나의 무기 체계로 인식하고, 생존성 구성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는 시스템엔지니어링 마인드와 수많은 실패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는 불굴의 창조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거북선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현재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국가의 안보 및 국민의 안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중단 없는 번영을 위해서 앞으로 한국해군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져 갈 것이며, 이의 중심에는 뛰어난 생존성을 갖는 함정이 절대 필요하다. 선진 해군국가에 비해 관련 인력 및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감안할 때 21세기 함정 설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존성 강화 설계기술의 독자 개발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국내 역량을 결집하여야 할 것이다. 뛰어난 생존성을 갖는 함정 설계기술을 바탕으로 함정 수출도 세계 1위가 되는 날이 도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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