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칠 대전충남 민예총 사무처장 |
그것은 대단한 사회적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예술밥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지만 예술적 행위를 통해 내적으로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형상화하는 것이고, 밖으로는 사회에 예술로서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회적 효용성을 이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역의 예술인들 중에는 대개 투-잡스 예술인들이 많다. 예술적 행위만을 가지고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예술을 하다가 도저히 생계를 꾸릴 수없는 지경이 되어 다른 직업을 더한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생활 속에서 예술적 끼가 발산되어 생활형 예술을 하게 되는 경우다.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예술밥 먹는 사람들의 일원으로 바라보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그 속내를 바라보면 딱히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도 어려운 지점이 있다. 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의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정말 생계형 예술인들이 문제다. 이들 중에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면서도 예술을 사수하면서 지독스럽게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이 기초 예술을 떠받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통해서 보는 예술적 성취도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지역에서 많은 세월을 고집스레 버티는 그 힘이 결국 지역문화를 버텨주는 힘의 원천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주위의 예술가 선후배들과 술 한 잔 기울이다 보면 예술적 자부심을 꼿꼿이 세워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예술가들의 복지나 생계에 대한 문제를 띄워 올리지 않고 땀방울의 값과 삶을 위한 권리는 논외로 치부한다. 이대로 가다간 수공업자가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이 사라져 가는 직업군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스러울 정도다.
예술가는 사회 통념상 여흥을 제공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며 은연중에 일하는 사람들의 범주에 넣지 않는 추세가 강해온 것도 사실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억대의 돈을 벌어가는 연예인들에게는 환호하면서 월 3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버텨내는 ‘딴따라’들의 치열하고 뜨거운 열정의 가치는 쉬이 인정하려고하지 않는다. 작은 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예술인으로서의 존경도 허락되지 않는 게 지역의 현실이다. 때문에 예술가들은 생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한겨울에 왕따 당한 베짱이 마냥 개미떼의 주변을 빙빙 돌며 눈치를 살피는 주변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문화예술단체의 실무자로서 예술가들의 생계문제나 문화 복지 문제에 대해 자꾸 자문하게 되고 또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의 근원을 덜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 대전문화재단이 출범을 한다. 문화재단이 할 일 많지만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둔 정책을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역문화의 경쟁력을 키우고 문화의 대중화를 꾀하기 위해서도 기초 예술 창작 단위가 튼실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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