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희 작가 |
다른 한 곳은 돼지 껍데기를 가늘게 잘라 실처럼 만들어 뜨개질해 만든 드레스가 창가 옆에서 위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그 옆에 대형 화폭 3개가 연이어 파노라마 형태로 작업이 한창이다.
-작품에 쓰이는 소재가 남다른 이유는.
▲처음부터 독특한 소재를 사용했던 건 아니다. 소재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다른 작가들이 느껴보지 못한 것들로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양한 소재들을 고민했던 것 같다. 예술작품을 식상하게 다가가면 생명력이 짧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고기 비늘을 구하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 주인이 의아해 하며 가리킨 곳이 쓰레기통이었다. 거기엔 비린내 짙은 비늘들과 핏빛으로 물든 내장들, 아가미, 끊긴 지느러미가 다른 쓰레기들과 뒤범벅 돼 있었다. 설마 그것을 가져갈까? 주인은 생각한 듯한데, 난 너무도 기뻤다. 아마도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물고기를 사랑했던 마음이 남아있었 것 같다.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물고기를 보고 난 유년시절 내 손아귀에 쥐어졌던 작은 물고기를 떠올렸던 것 같다.
-이미 죽은 물고기 비늘 등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버려진 물고기 비늘은 생명력과 육체를 빼앗겨 더는 반짝이지 않으며 지독한 냄새와 핏빛으로 물든 쓰레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난 그 상실과 죽음 앞에 치유와 삶이라는 자그마한 명목으로 버려진 그들의 피부를 이식하는 작업을 한다. 물고기 비늘을 깨끗이 씻고, 썩히고, 말리고 하는 작업을 몇 주, 그리고 하나하나 핀셋으로 골라 다른 육체에 가지런히 비늘을 붙인다. 이런 행위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물고기의 상실과 죽음에 대한 위문공연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버려진 물고기 비늘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다시 작품의 소재로 쓰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최근 하는 작업들은?
▲`수면공간', `치유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수면공간은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중간 단계에 대한 해석이며, 치유의 공간은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물고기 비늘이 프린트된 옷을 입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공간에 서 있는 나 역시 치유해야 할 공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런 표현을 위해서는 공간,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사용된다. /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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