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에 있는 우리들 공원 야외특설무대에서 처음 치러진 `대전청소년 마임페스티벌'은 `웃어라, 즐겨라, 표현하라'는 슬로건 아래 마련된 마임축제였다.
흔히 마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판토마임' 정도에 그치는 것이 고작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임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고,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의 장르인 연기나, 무용, 나아가 뮤지컬 등이 모든 인간의 표현이나 몸짓 혹은 신체표현을 근간으로 하는 예술형식의 장르라고 할 때 마임은 언제나 그 출발선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임은 가장 솔직하고 자유롭게 또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청소년층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형식일 수 있다.
이번 `대전청소년 마임페스티벌'의 주요행사는 `청소년 몸짓대회'였지만 그보다 의미 있어 보인 것은 단지 청소년 몸짓대회만을 위해 프로그램 구성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전청소년 마임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남사당 놀이마당이 한판 굿으로 벌어지고 난 뒤 줄줄이 이어지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들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획일적으로 먹고 마시는 축제중심에서 벗어나, `나무의 꿈'을 선사했던 마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한 여인의 삶과 시를 일인극 형식으로 승화시킨 연극, 한국전통무용으로 보는 사랑의 춤, 신명 풍무악 등이 무대에서 펼쳐져 마임페스티벌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반면 공원 거리거리에는 키다리로 분장한 병장들과 아기공룡 둘리, 피에로들이 돌아다니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웃음을 주었으며, 비보이들의 화려하고 현란한 몸짓에 청소년들은 환성을 질렀다. 협주단, 몸짓 드로잉 퍼포먼스, 핸드프린팅 등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는 마임축제였다.
그 가운데 청소년들의 차고 넘치는 끼와 재능을 겨룰 수 있었던 `청소년 몸짓대회' 본선에 진출한 9팀의 겨룸은 청소년들의 재치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열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자신이 어릴 적부터 좋아해 온 여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기까지 함께 한 자신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보여준 참가자의 연기에 바라보는 이들이나 연기자나 함께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예술공연으로 마임경연대회를 함께 준비한 이번 축제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많은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대마임연구소제스튀스가 주관해 치러진 이번 행사는 행정기관의 넉넉하지 못한 지원으로 여러 단체의 심적 물적 후원을 통해 치러질 수밖에 없었고 행사의 대부분을 자원봉사인력으로 힘겹게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홍보의 다양성면에서나 전반적인 진행상에도 문제점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전청소년 마임페스티벌'이 청소년마임 경연대회로 비쳐져 경연자들만이 즐기는 축제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았던 축제였지만 정작 누구나 그 자리에 가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대전의 문화적 풍토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기획도 아쉬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1회 2009 대전청소년 마임페스티벌'이 갖는 의의는 분명히 많다. 그동안 대전에서 있어왔던 청소년들의 축제참가는 성인중심의 축제마당에 한자리 끼워 넣기나 구색 맞추기에 머물러 있었는데 2009 청소년마임페스티벌은 이를 벗어나 오히려 그 주체의 자리에 청소년을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했다고 본다. 더욱이 축제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유흥적 요소만으로 기획되어 소비성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다른 청소년 놀이마당에 비해 이번 축제는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의 다양한 협연과 공연이 함께 어우러졌다는 점에서도 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문화를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을 마련해주어 문화예술이 단지 성인주도로 이루어지거나 편재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대전의 젊은 내일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다. 아직은 여러 부족한 면이 많은 청소년 축제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축제의 주체로서 청소년을 세우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생산적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이번 축제의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다만 더 많은 어른들과 기관 단체에서의 관심과 후원이 있을 때 축제로서의 꿈이 더욱 비상할 수 있다. 성장 가능한 예술과 문화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의 주체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한 것은 우리의 한계이다./변상형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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